[한경에세이] 베네치아 - 보이지 않는 도시

김봉렬 <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정말 오랜만에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다시 갔다. 27년 전 이 도시를 한 해에 세 번이나 방문했다. 모두 해서 한 달가량 머물렀다. 샅샅이 살펴 이 도시를 정복했다고 믿었다. 베네치아는 세계 어느 곳보다 매력적이었지만, 관광객이 너무 많아 주민의 일상적 삶을 만나기 어렵다는 흠이 있었다. 이번 여행은 관광객이 가장 적은 겨울 비수기를 택했다. 그러나 세계 10대 축제 중 하나라는 ‘가면 카니발’ 기간과 겹쳤다. 그 보름 기간에 300만 명이 방문한다니 여행 의도는 완전히 빗나갔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다. 모두 118개 섬과 150개 운하로 이뤄졌다. 바다를 메워 땅을 만들다 남은 물길이 운하로, 이 도시의 유일한 교통로다. 베네치아는 상업과 경제 도시다. 십자군 전쟁 때 동서를 잇는 중계 무역으로 그야말로 떼돈을 벌어 유럽의 금융 중심지가 됐다. 영국의 시골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베니스의 상인》을 쓸 정도였다. 베네치아는 예술의 도시다. 티치아노 베첼리오와 같은 베네치아 화가들은 피렌체와 함께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현재도 베니스 비엔날레와 영화제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 경연장이다.베네치아 하면 떠오르는 책이 있다. 이탈리아 거장 소설가인 이탈로 칼비노가 쓴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다. 소설 내용은 단순하다. 마르코 폴로가 그가 본 여러 도시를 쿠빌라이 칸에게 설명하는 내용이다. 이 얇은 소설은 총 11장으로 이뤄져 있는데 기억, 욕망, 기호 등 도시에 부여한 특성이 그 소제목이다. 총 55개의 상상 속 도시를 강렬하게 이야기한다. 그러나 모든 도시의 설명은 결국 하나의 도시를 말하는 것 같다. 그렇다. 바로 마르코 폴로의 고향인 베네치아다. 중세와 르네상스의 기억, 십자군과 카사노바의 욕망, 건물과 다리의 섬세함, 수많은 인물과 장소의 이름들, 그리고 기호들…. 역사가 깊고 다양성을 포용하는 도시일수록 한 도시 안에 수많은 다른 도시가 숨어 있다. 이들이 칼비노가 말한 ‘보이지 않는 도시들’이고, 이를 많이 가진 도시가 곧 위대한 도시다.

역기능도 있다. 상주 인구 5만5000명에 불과한 이곳에 한 해 관광객 3000만 명이 몰려온다. CNN이 ‘가보지 않아도 될 12개 도시’에 꼽을 정도로 관광 공해를 앓고 있다. 무엇을 보러 올까? 처음엔 운하, 성당, 광장의 ‘보이는 도시’를 보러 온다. 그러나 대다수는 이 도시의 기억과 기호와 욕망과 섬세함과 숨겨진 것을 찾으러 온다. 나 역시 이번엔 ‘카니발 베네치아’라는 보이지 않는 도시에 매료됐다. 우리 도시는 보이지 않는 것을 얼마나 갖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