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상징 미국 미네르바대, 한국에선 문도 못 열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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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값 등록금'의 역설 (3·끝) 규제에 가로막힌 대학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미네르바대는 ‘캠퍼스 없는 대학(CFC)’의 선두 주자다. 모든 강의는 100% 온라인으로 한다. 교수들도 재택 근무한다. ‘대학 본부’라 불릴 만한 사무실엔 두세 명 정도가 상주하는데 이들의 목적은 탐방객 안내다. 유일한 ‘오프라인’ 건물은 기숙사다. 하버드대만큼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세계에서 모여든 학생들은 15분짜리 동영상 강의를 함께 듣고, 나머지 시간엔 토론을 벌이며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간다.
교육부, 말로만 벤치마킹
'15분 강의-토론 수업' 유명
전세계 학생들 입학 경쟁
한국은 '낡은 규제' 여전
회당 강의 25분 넘겨야 하고
정원 통제로 대학신설 어려워
2014년 개교 이래 대학 혁신의 상징으로 떠오른 미네르바대는 한국 대학들의 단골 탐방 코스기도 하다. 교육부도 지난해 대학교육과정 개혁안을 내놓을 때 미네르바대의 수업 방식을 ‘벤치마킹’ 대상으로 제시했을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 미네르바대 같은 대학 모델을 적용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고등교육법의 촘촘한 규제 그물망을 피할 수 없어서다. 온라인을 무대로 국경 없는 대학 간 전쟁이 펼쳐지고 있는 시대에 한국 대학들만 규제로 가로막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미래 대학’ 규제하는 정부
류태수 한양사이버대 부총장은 지난해 미네르바대 탐방 후 ‘현실의 벽’을 절실히 느껴야 했다. ‘미네르바대 모델을 도입하려면 비인가 대안학교 형태로 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게 그가 도달한 결론이다. 국내 온라인(사이버 혹은 원격) 대학에 적용되는 규정이 ‘오프라인’ 대학 기준으로 만들어진 터라 각종 제약이 많다는 것이다. ‘디지털’ 서비스를 ‘아날로그’ 방식으로 규제한다는 얘기다.미네르바대의 상징인 15분 강의와 토론을 결합한 수업 방식부터 한국에선 ‘규정 위반’이다. 교육부 지침에 따르면 온라인 강의는 회당 25분을 넘겨야 한다. ‘교육의 품질 관리’를 명목으로 교육부가 아예 학점 인정을 위한 수업 분량을 정해놨다. 토론이 주로 이뤄지는 기숙사를 짓는 것도 ‘불가’다. B사이버대 총장은 “온라인 대학은 온라인에 맞는 것만 하라는 게 정부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기숙사는 오프라인 영역이라는 얘기다.
결정적으로 국내에선 아예 사이버대 신설 자체가 어렵다. 정부의 정원 통제 탓이다. 교육부는 대학 구조조정 목표를 전체 정원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어 온라인 강의를 듣는 학생 수도 통제하고 있다. 기존 사이버대 역시 현 정원에서 한 명도 늘리지 못한다. 펜실베이니아주립대가 설립한 온라인 대학인 펜스테이트월드캠퍼스의 학생 수가 10만 명을 넘어선 것과 대조적이다. 등록금 역시 엄격하게 통제받는다. 한 학기에 100만원 수준인 등록금은 2001년 출범 이후 올해까지 줄곧 동결 상태다.◆감사원 감사까지 받는 사립대전문가들은 대학 패러다임이 급변하고 있는 만큼 과감한 규제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미국 스탠퍼드대가 마련한 온라인 강좌 플랫폼(MOOC)인 코세라는 회원 수가 2500만 명을 넘어섰다. ‘무크’를 비롯해 글로벌 대학 간 경쟁이 온라인을 무대로 펼쳐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2030년이면 수요자가 5000만 명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국경 없는 대학 전쟁이 시작될 것이란 얘기다.
한국뿐만 아니라 선진국 대부분이 학령인구 감소를 겪으면서 밖으로는 유학생을 유치하고, 안으로는 유출을 막기 위한 ‘교육 쇄국주의’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경쟁력 없는 국내 대학들은 존폐 위기에 직면할 게 자명하다. 온·오프라인 통합을 위한 규제 개혁이 절실한 이유다. 하지만 국내 현실은 정반대다. 오프라인 대학이 ‘사이버’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도 제재 대상이다. 온라인으로 딸 수 있는 학점 총량을 제한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조지아공대가 이미 일부 석사학위를 온라인 강의 수강만으로 딸 수 있게 하는 등 변화를 시도하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다.
대학의 해외 진출도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커리큘럼’을 수출하는 식으로 해외에 ‘프랜차이즈’를 내는 것조차 전임교원 제한 때문에 사실상 실현이 어려워졌다. 지방의 국립대 총장은 “베트남 등 한국 대학이 진출할 만한 아시아 국가의 교수 연봉은 한국에 비해 굉장히 낮다”며 “현지 연봉 수준에 맞춰 갈 만한 한국 교수를 구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한국 연봉을 주면서 베트남에 보내는 것도 적자를 감수하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라고 꼬집었다.정부의 과도한 간섭은 대학 혁신은커녕 캠퍼스를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있다. 학교 비정규직 처우 문제로 연세대 총장실이 점거당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의 대형 사립대 총장은 “교육부 감사도 모자라 감사원 감사까지 받고 있는 게 국내 대학의 현실”이라며 “글로벌 대학들은 미래로 향해 가는데 한국만 과거로 회귀하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 50개
약 3200명 정원의 대학 규모를 산정했을 때 2022년엔 50여 개의 대학이 정원을 하나도 채울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절벽에 가까울 정도로 고교 졸업생이 급감하고 있어서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