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수소차 치고나가는 일본 … 3만여개 주유소에 충전시설 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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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소 규제 풀어 '지역경제 중심지'로 육성일본 정부가 전기자동차(EV)와 수소연료전지차(FCV) 등 차세대 자동차 보급을 촉진하기 위해 기존 주유소에 전기차·수소차 충전시설을 병행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하기로 했다. 일본 전역에 3만 개 넘게 설치돼 있는 주유소를 차세대 자동차 보급의 전초기지로 삼을 뿐 아니라 지역 에너지 거점으로 조성하기 위해 주유소 부지에 편의점과 물류시설 설치도 가능하도록 할 방침이다.◆전기차·수소차 보급 확대 촉매 기대2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주유소를 지역 에너지 종합거점으로 적극 활용하기 위해 관련 규제를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규제 완화안의 골자는 전기차와 수소차에 필요한 전기 및 수소 공급시설을 기존 주유소에 갖출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우선 특구를 지정해 시험운용한 뒤 관련 법령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주유·세차만 가능한 부지에
편의점·물류시설 병설 추진
직원 상주 규정 없애고 무인화
지하 탱크시설, 지상 설치도 허용
주유소를 에너지 거점 삼아
미래 친환경차 보급 확대할 듯
일본에서 주유소는 안전 등의 이유로 소방법에 따라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다. 전기차·수소차 충전시설은 기존 주유시설에서 최소 10m 이상 떨어진 곳에 설치해야 한다. 공간이 협소한 주유소가 많은 일본에선 이 같은 규정이 전기차·수소차 충전시설 보급의 제약 요인으로 꼽혀왔다.
유럽과 중국 등을 중심으로 전기차 등 차세대 차량으로의 전환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일본도 전기차·수소차 보급이 더 이상 늦어져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이 커진 점 역시 규제 완화의 배경이다. 일본 내 전기차 충전시설은 2만3000여 곳, 수소차 충전소는 100여 곳에 불과하다. 특히 수소차는 2025년까지 320개 충전소를 마련한다는 일본 정부 목표치에 크게 못 미치고 있다.전국 3만여 개 주유소에 차세대 차량용 충전시설이 갖춰지면 전기차와 수소차 보급이 크게 탄력을 받을 것이란 기대가 커지고 있다. 앞서 경제산업성은 수소차 보급을 확대하고자 수소차 충전소 설치·운영과 관련한 20여 개 규제도 올해 안에 대폭 완화하기로 했다. 수소차 충전시설 안전 감독관 요구 요건을 완화하고 관련 시설 요건도 간소화했다.
◆지역경제 부활 중심지로 주유소 주목
경제산업성은 석유·가스업계 및 관련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전문가기구(연구회)를 출범해 규제 완화의 기본적인 내용을 작성한다는 방침이다. 연구회는 소방청 등 유관기관과 슈퍼마켓 편의점 등 소매업체, 통신판매회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오는 5월까지 대략적인 규제 완화의 큰 틀을 마련한 뒤 이르면 내년에 규제 완화를 시행한다는 계획이다.주유소 부지에 편의점과 물류영업소도 설치할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현재는 주유소 부지 내에서 사업자가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주유와 세차로 제한하고 있다. 또 주유소에 최소 1명 이상 종업원이 24시간 상주하도록 한 규정도 폐지해 전면 무인화로 운영되는 셀프주유소도 가능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지하에 설치하도록 돼 있는 유류저장 탱크를 지상에도 설치할 수 있도록 해 주유소의 경영 효율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가 이처럼 규제 완화의 초점을 주유소에 맞춘 것은 주유소를 차세대 산업 활성화의 기반이자 지역 에너지 종합거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다. 일본은 인구 감소 등의 영향으로 1994년 6만 개에 달하던 주유소 숫자가 2016년 말 현재 3만1500여 개로 줄었다. 휘발유 수요도 연 1~2% 감소하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와 수소차가 기존 휘발유 차량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되면서 충전설비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여전히 일본 전역에 거미줄처럼 깔려 있는 주유소 인프라를 신기술 활용의 거점이자 지역사회 네트워크의 중심으로 유지시켜나간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경제산업성은 주유소를 ‘서비스스테이션(SS)’이란 명칭으로 부르는 등 각종 정책 개선과 규제 완화의 주 대상으로 주목하고 있다.니혼게이자이신문은 “주유소가 전기차·수소차 보급의 촉매역할을 할 뿐 아니라 무인 주유소와 이동형 탱크 등의 도입으로 인구 감소에 따른 경영난에도 대처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주유소가 새로운 지역경제 중심지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