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정부 못 믿겠다"는 철강협회의 이유있는 반발

철강업계가 제대로 화가 났다. 미국의 강력한 철강 제품 수입규제가 진작부터 예상됐음에도 정부의 미온적 대응으로 사태를 그르쳤다며 불만이 폭발하고 있는 것이다. 그제 열린 한국철강협회 정기총회에서 주요 철강사 대표들은 하나같이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데 공감했다. 미국이 무역확장법 232조를 근거로 들고나온 세율 53%의 ‘관세폭탄’이 현실화할 경우 대미 수출이 사실상 막혀버리기 때문이다.

업계는 2016년 미국 상무부가 포스코 열연강판에 반덤핑관세를 부과했을 때부터 정부의 적극 대응이 필요했다고 입을 모은다. 그런데 이전 정부, 현 정부 모두 미국의 수입 제한 움직임에 이렇다 할 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4월 수입 철강이 미치는 영향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그 결과가 올초 나온다는 게 이미 예고됐는데도 정부가 미적대다 골든타임을 놓쳤다는 지적이다.철강업계가 정부만 믿을 수는 없다며 협회를 중심으로 수입규제에 대응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철강업계 대표들은 같은 맥락에서 더 이상 정부가 철강협회에 내려보내는 ‘낙하산’ 상근부회장을 받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철강협회 상근부회장은 관례적으로 정부나 공공기관 고위직 출신이 맡아왔다. 그렇지만 업계를 도와주지도 않는 정부로부터의 ‘낙하산’은 이제 사절이라는 얘기다.

철강업계의 하소연은 십분 이해하고도 남는다. 주요 선진국들은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 법인세를 내리고 수입 장벽도 높이는 추세다. 이에 반해 한국에서 기업은 보호·육성 대상이라기보다는 규제·처벌의 대상이다. 중국, 미국 등지에서 한국 기업들이 부당한 대우를 당해도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다. 미국에는 뒤늦게 ‘WTO 제소’라는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상황을 오히려 더 악화시킨다는 우려가 많다.

철강업계에선 국내 투자를 포기하고 미국에 공장을 지으려는 각자도생 움직임이 벌써 가시화되고 있다. 기업이 하나둘 투자를 중단하고 해외로 떠나버리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겠나. 정부는 “지금이라도 청와대와 정부가 백악관과 소통에 나서 통상압박을 풀어야 한다”는 업계의 호소를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