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아 언니, 봤죠!"… 최다빈 '한국 피겨' 미래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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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종합 7위…생애 최고 성적표‘피겨퀸’ 김연아(26)는 어린 시절 그의 ‘롤모델’이었다. 존경했고 사랑했으며 닮고 싶었다. “언니가 와서 응원해주면 힘이 날 것 같다”던 바람대로 피겨여왕은 그날 그에게로 왔다. 23일 강원 강릉아이스아레나. 그는 자신의 우상이 보는 앞에서 누구보다 행복한 연기에 빠져들었다. 차세대 피겨퀸, 최다빈(18)이다.
어머니께 바친 '은반 위 사모곡'
김하늘도 무결점 연기 '13위'
'선배' 메드베데바 제치고 자기토바 '피겨퀸' 등극
◆메달만큼 값진 7위최다빈은 이날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기술점수(TES) 68.74점, 예술점수(PCS) 62.75점을 합쳐 131.49점을 받았다. 전날 쇼트 점수(67.77점)와 합쳐 총점 199.26점을 받은 최다빈은 24명의 결승 진출 선수 가운데 종합 7위에 당당히 올랐다.
당초 목표 ‘톱10’을 훌쩍 뛰어넘은 생애 최고의 성적표를 받아든 것이다. 최다빈은 프리 스케이팅 점수와 총점 모두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받은 개인 최고점(프리 128.45점, 총점 191.11점)을 경신했다.
최다빈은 자신의 첫 올림픽을 모두 마친 뒤 “하늘나라에 계신 어머니가 옆에 있었다면 잘했다고 꼭 안아주셨을 것 같다”며 눈물을 삼켰다. 최다빈은 지난해 6월 암 투병 중이던 어머니를 여의었다. 깊은 슬픔이 찾아왔지만 이모와 언니의 눈물 어린 설득으로 스케이트를 다시 신은 지 6개월여 만에 생애 최고의 날을 완성한 것이다.◆“엄마를 위해”…간절했던 평창의 꿈
최다빈은 2년 전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다. 간절한 그에게 운명 같은 기회가 찾아왔다. 발목 부상으로 부진에 빠진 박소연(21)의 대타로 출전한 삿포로 동계아시안게임에서 총점 187.54점의 개인 최고 점수로 금메달을 획득했다. 동계아시안게임 최초의 피겨 금메달이었다. 지난해 4월에는 친구 김나현(18)이 부상으로 출전권을 반납한 세계선수권 대회에 대신 나가 개인 최고점인 191.11을 기록하며 종합 10위에 올랐다. 김연아 이후 한국 피겨 최고 성적. 이 대회에서 성적 순으로 배정되는 올림픽 출전권 2장을 따낸 것도 그였다. 그의 이름이 널리 회자하기 시작한 계기였다. 빙상 관계자는 “최다빈이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하자 어머니의 병세가 눈에 띄게 좋아졌었다. 그러자 최다빈이 세계선수권 준비에 더욱 몰두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닥터 지바고’ 오리지널사운드트랙에 맞춰 연기를 펼친 최다빈은 12개의 기술과제를 수행해야 하는 프리 연기 첫 과제에서 트리플 토루프를 빼먹는 실수를 해 다소 불안한 출발을 했다. 하지만 침착함을 잃지 않고 나머지 11개 과제를 깔끔하게 소화해냈다. 특히 초반에 실수로 빼먹은 트리플 토루프까지 나중에 붙여 뛰는 임기응변으로 무결점 연기를 완성했다.수리고 출신인 최다빈은 올해 고려대에 입학할 예정이어서 김연아(수리고-고려대)와 긴 인연을 이어간다. 한국 선수단 최연소 출전자인 김하늘도 무결점 연기를 펼쳐 13위를 차지했다. 이날 받은 프리 스케이팅 점수 121.38점과 전날 받은 쇼트 점수(54.33)를 합쳐 175.71점을 받았다. 점수와 순위 모두 자신의 최고기록이다. 그는 149㎝의 작은 키 때문에 진로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아픔을 간직하고 있다. 네티즌들의 악플까지도 견뎌내기 시작한 건 한 외국 스케이터를 알게 된 이후부터였다. 김하늘은 “일본의 남자 피겨 스케이터 우노 쇼마를 보며 좌절하지 말자고 다짐했다”고 말했다. 작은 키(160㎝)인 우노 쇼마는 평창 대회에서 은메달을 따냈다. 김하늘은 프리를 마친 뒤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쏟았다.◆‘피겨요정’ 자기토바 ‘피겨여제’로
이날 평창에선 새로운 ‘피겨퀸’이 탄생했다. 15세 러시아 소녀 알리나 자기토바다. 자기토바는 전날 세계신기록을 세우며 1위에 오른 쇼트(82.92점)에 이어 이날도 ‘퍼펙트’ 연기를 펼치며 156.65의 높은 프리 점수를 받아냈다. 종합 점수 239.57점을 기록한 자기토바는 1.31점 차로 선배이자 현재 여자싱글 세계랭킹 1위인 예브게니야 메드베데바(OAR)를 꺾고 새 피겨여제로 등극했다. 메드베데바는 이날 혼신의 연기로 자기토바와 동점인 156.65의 점수를 받아냈지만, 전날 쇼트 점수에서의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후배에게 여제의 자리를 내줬다. 동메달은 캐나다의 케이틀린 오즈먼드가 가져갔다.
이관우 기자 leebro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