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국민 보호하는 경찰영사 55개국 65명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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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유학생 아일랜드서 '묻지마 폭행'…해외 인종차별 범죄 급증하는데어학연수차 아일랜드로 간 유학생 이성원 씨(30)는 지난 13일 오후 11시께(현지시각) 아일랜드 학생들에게 ‘묻지마 폭행’을 당했다. 동생과 집으로 돌아오던 중 대여섯 명의 아일랜드 학생들이 담배를 요구했고, 거부하자 두 사람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맥주캔을 머리에 던지고 주먹질을 했다. 아시아인을 비하하는 인종차별적 발언까지 내뱉었다. 이씨는 “평소 조심하라는 말을 자주 들어 최대한 마찰이 일어나지 않도록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지만 폭행을 당했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재외국민 대상 범죄 6년새 3배↑
일반 영사가 본업과 병행 처리
신속한 대응 어려울 때 많아
대사관 연락해도 도움 못받아
재외국민보호법 필요하지만
발의만 된 채 국회에서 '낮잠'
◆해외범죄 피해 급증…대사관 도움 ‘감감’
폭행사건 발생 뒤 경찰 수사를 받는 과정에서 이씨는 더 큰 좌절을 느꼈다. 주변의 신고로 경찰이 도착했지만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탓에 피해 상황을 설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대사관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진단서와 진정서 등을 마련하라는 대답만 들었을 뿐 신속한 초동조치는 이뤄지지 못했다.
아일랜드는 사건·사고를 전담하는 경찰영사가 없는 곳이다. 이씨는 “대사관도 현지 경찰에게 제 의견을 전달하는 것 이외에 할 수 있는 부분이 거의 없어 보였다”고 하소연했다.해외 여행자와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범죄는 매년 급증세다. 재외국민의 해외 범죄 피해 건수는 2011년 4458건에서 지난해 1만2529건으로 세 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해외 출국자 수가 1270만 명에서 2640만 명으로 두 배가량 증가한 것보다 더 빠른 상승세다. 지난해 10월 영국에선 대학생 A씨가 백인 남성으로부터 샴페인병으로 폭행을 당해 치아 1개가 부러지고 10여 개의 치아가 흔들리는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재외국민을 보호할 수 있도록 사건·사고를 전담하는 영사 증원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에 따르면 세계 183개국에 마련된 재외공관 중 사건·사고를 다루는 영사는 총 188명이다. 이 중 사건·사고만 전담하는 경찰 영사는 65명(55개 공관)에 그친다. 경찰 영사는 사건·사고를 전담해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보장되고 신속한 초동대응이 가능하다.◆“신속 대응 위한 현지 네트워킹이 중요”
경찰 영사가 없는 곳은 일반 영사가 다른 업무와 병행해 이를 처리한다. 하지만 소수의 영사가 총무·영사·문화·외신 등 업무와 사건·사고를 동시에 담당해 신속한 대응을 하기가 어렵다. 외교부는 올해 39명의 사건·사고담당 영사를 증원할 예정이다.
재외국민보호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17대 때부터 꾸준히 시도돼 20대 국회에서도 관련 법안 3건이 발의됐지만 통과 전망은 불투명하다. 외교부는 영사콜센터를 확대한 해외안전지킴센터를 추진 중이다. 외교부 관계자는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해외안전지킴센터를 조만간 신설해 꼼꼼한 모니터링과 빠른 초동대응을 준비할 계획”이라고 전했다.현지 네트워킹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사건·사고담당 영사가 있더라도 현지 경찰 협조가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기철 전 LA총영사는 “총영사 재직 당시 재외국민이 많은 지역에 근무하는 주요 경찰서 관계자와 항상 연락이 가능하도록 일종의 핫라인을 구축했다”며 “현지 관계자와 네트워킹을 꾸준히 이어가야 긴급 상황에 대비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장현주 기자 blackse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