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김상조 사과' 무색한 공정위의 일 처리

임도원 경제부 기자 van7691@hankyung.com
“저희가 잘한 건 전혀 아니죠. 김상조 위원장도 안타까워했습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26일 기자들과 만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 처분 오류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사정은 이렇다. 공정위는 지난 12일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면서 표시광고법을 위반한 혐의로 SK케미칼을 검찰에 고발했다. SK케미칼이 2002~2013년 가습기 살균제를 제조·판매하는 과정에서 독성물질이 포함된 사실을 제품 라벨에 표시하지 않은 혐의가 드러났기 때문이었다.이후 공정위 사건 담당자들은 검찰에서 고발인 조사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뒤늦게 고발장에 오류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SK케미칼은 지난해 12월 SK디스커버리(존속법인)와 SK케미칼(신설법인)로 회사를 쪼갰다. 상장사인 SK케미칼 분할은 기업 공시인 만큼 언론을 통해서도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공정위는 이 사실을 파악하지 못하고 고발 대상인 SK디스커버리를 고발장에서 누락했다. 고발장을 작성하면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다.

게다가 공정위는 전속고발권을 갖고 있다. 공정위 고발이 없으면 검찰은 ‘주범’인 SK디스커버리를 수사할 수 없다. 공정위는 부랴부랴 검찰의 공소장에 해당하는 심사보고서를 다시 작성해 SK디스커버리에 보냈고, 28일 전원회의를 다시 열어 사건을 심의하기로 했다. SK디스커버리를 고발장에 집어넣기 위해서다.공정위 관계자는 “기존 의결서에서 한 줄만 바꾸면 되는 사안”이라고 해명했지만,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공소 제기에 필요한 시간을 더 잡아먹게 됐다. 가뜩이나 이 사건의 공소시효는 4월2일로 불과 한 달여밖에 남지 않았다.

더욱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김 위원장이 과거의 부실 처리에 대해 그동안 두 번이나 사과한 사안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2일 가습기 살균제 사건 처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공정위가 그동안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며 “통렬히 반성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이번 처분 오류로 사과의 진정성마저 의심받게 됐다. “증거를 철저히 수집해서 사건을 면밀히 재검토했다”는 말도 무색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