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 "한국 '셔틀 에듀케이션', 글로벌 인재 못 길러… 전 학생 기숙사생활 RC가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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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배경 학생들 어울리며 자연스레 소통 능력 길러‘한국 대학이 사면초가(四面楚歌)에 처했다.’
미국 하버드·예일대 등도 운영
연세대 도입때 반발 컸지만 나중엔 학부모가 감사 인사
한국 아시아 교육허브 도약위해
대학 스스로 혁신 할수있게 자율형 사립대학 허용해야
국내 고등교육의 위기를 말하는 목소리가 높다. 안으로는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마주하고, 밖으로는 해외 유수 대학들과 인재유치 경쟁을 벌여야 한다.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67)은 27일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2012년 총장에 취임했을 때 ‘연세대의 생존법은 뭘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며 “아이비리그 등 해외 대학 총장들을 ‘취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얻은 해법은 ‘RC(Residential College)’라는 새로운 교육모델이었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 예일대, 영국 옥스퍼드대 등 30여 개 유수 대학은 모두 RC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라며 “한국이 뒤처져선 안 된다는 위기를 느끼고 2013년 송도캠퍼스에 RC를 도입했다”고 했다.
RC는 학습과 생활을 통합하는 공동체 교육이다. 집에서 통학하는 대신 일정 기간 캠퍼스에 거주하며 강의, 봉사활동 등 여러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정 전 총장은 “연세대에서 5년여간 RC가 성공적으로 자리잡는 걸 본 다른 대학들의 관련 문의가 적지 않다”고 했다. 이에 RC ‘창립멤버’들과 RC 도입 과정 및 노하우를 정리한 책 《미래 인재와 대학 혁신》을 지난 19일 출간했다.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RC가 대체 뭐냐’ ‘대학을 기숙학원으로 만드는 거냐’는 질문이 쏟아졌다. 정 전 총장은 “학생들과 수차례 ‘끝장 토론’을 벌여 설득했다”며 “RC 목적은 학습량만 늘리는 게 아니라 통합의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했다.
RC에서는 3명의 학생이 기숙사 1실을 함께 쓴다. 3명이 생활할 때 사회성이 가장 좋아진다는 해외 연구 결과를 반영했다. 유학생 등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함께 생활하면서 갈등을 조율하는 법을 배운다. 그는 “초창기 누구라고 하면 알 만한 집에서 총장실로 전화가 와 ‘우리 애는 살면서 누구랑 방을 같이 써본 적이 없으니 독방을 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호히 거절했는데 한 학기가 지난 뒤 ‘아이가 공감·소통능력이 눈에 띄게 좋아졌다’면서 고맙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정 전 총장은 “집과 강의실을 오가는 ‘셔틀 에듀케이션(shuttle education)’으로는 소통하고 협력하는 글로벌 인재를 키울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통학시간이 절약되니 자연스레 학습량도 늘었다. 연세대 자체 설문조사 결과 재학생의 평균 통학시간은 1.6~1.7시간에 달한다.대학이 스스로 변화를 만들어갈 수 있도록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 그는 “한국이 ‘아시아 교육허브’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각 대학이 특성화한 프로그램을 적극 개발할 수 있어야 한다”며 “정부 재정 지원을 받지 않는 대신 등록금 책정 및 학생 선발에서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주는 ‘자율형 사립대학’을 허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