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흔든 판결들] "차명주식 팔아 신주 매입해도 증여세 중복 과세 안 된다"

주식 명의신탁과 증여의제 (대법원 2017년 2월21일 선고, 2011두10232 판결)

사건의 개요
아들 명의로 주식투자한 아버지
증여세 낸 뒤 매도해 새 주식 매입
세무서가 또 증여세 부과하자
"실질적 재산 증식 없었다"며 제소

대법 판결
"명의신탁 주식은 증여세 내지만
매도대금으로 산 다른 주식 과세는
과잉·이중 과세로 볼 수 있어"

생각해 볼 점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은
적용범위 엄격히 제한해야

배인구 < 법무법인 로고스 변호사 >
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의 2는 명의신탁재산의 증여의제(법률상 증여가 아니지만 경제적으로 증여와 같은 효과가 있어 세법상 증여로 간주하는 것)를 규정하고 있다. 권리의 이전이나 행사에 등기 등이 필요한 재산이 실제 소유자와 명의자가 다른 경우 조세회피 목적이 있다면 증여로 간주해 증여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주식투자자가 아들 명의로 계좌를 개설한 뒤 그 계좌로 주식을 매입했다면 증여로 간주해 증여세를 물릴 수 있다.

이처럼 증여가 아님에도 증여로 의제해 과세함에 따라 재산권에 대한 과도한 제한을 야기하고, 또 이런 증여세가 조세회피에 대한 과징금 성격을 갖는다고 하더라도 헌법상 비례의 원칙과 평등 원칙에 반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하지만 헌법재판소는 명의수탁자를 실질적으로 증여받은 자와 동일하게 취급해 고율의 증여세를 부과하더라도 헌법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헌재 2004년 11월25일 선고 2002헌바66 결정, 2005년 6월30일 선고 2004헌바40 결정 등).

그런데 명의신탁으로 주식을 매수한 경우 기존 명의신탁의 연장선에서 계속 명의신탁 관계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면 명의수탁자에게 신주가 배정되거나 주식 매각대금으로 새로운 주식을 매수하는 경우, 명의신탁자의 사망으로 명의수탁자가 상속받는 경우다. 판례는 명의신탁 후 명의수탁자에게 무상으로 신주가 배정된 경우 별도의 증여세 부과 대상이 아니라고 했으나(대법원 2009년 3월12일 선고 2006두20600 판결, 2011년 7월14일 선고 2009두21352 판결) 명의신탁자가 명의수탁자 명의로 유상으로 신주를 인수한 경우에는 별도의 증여세 과세 대상이라고 판시했다(대법원 2006년 9월22일 선고 2004두11220 판결 등).

그렇다면 명의신탁자가 명의신탁 주식을 매도한 후 그 대금으로 다시 명의수탁자 명의로 주식을 취득한 경우는 어떤가. 아버지가 아들 명의 주식계좌를 터 주식을 매매한 대금으로 새로 매입해 아들 명의로 명의개서 한 주식에 대해서도 증여로 봐 증여세를 또 부과해야 할까. 대법원이 2017년 2월21일 선고한 2011두10232 판결은 그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갑의 아버지는 갑 명의로 2005년 1월27일 A증권사에, 28일 B증권사에 각각 증권계좌를 개설하고 투자금을 입금했다. 이어 그 차명 증권계좌를 이용해 2007년 5월22일께까지 수십 종류의 상장주식을 수백 회 넘게 매수·매도했다. 그 과정에서 상장주식은 네 차례 갑 명의로 명의개서가 됐다. 과세관청은 갑의 아버지가 투자해 갑 앞으로 네 차례 명의개서된 상장주식에 대해 각각 갑이 증여받은 것으로 보고 2007년 9월6일 갑에게 증여세를 부과하는 처분을 했다.

이에 대해 갑은 자신의 아버지가 명의신탁한 주식을 매도해 그 대금으로 이후 다른 주식을 취득한 이상 자신 명의로 새로 취득한 주식이 법률적·형식적으로는 별도 주식에 해당하더라도 2005년도와 2006년도는 주식의 종목과 수량이 변경됐을 뿐 실질적 재산 가치에는 변동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두 차례에 걸쳐 과세처분한 것은 이중과세이거나 비례의 원칙 또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위반돼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고등법원은 갑의 아버지가 차명 증권위탁계좌를 통해 2005년에 소유한 주식을 매도해 2006년도에 갑 명의로 새로운 주식을 매수했다면 2006년 보유 주식 중 2005년과 다른 신규 보유 주식과 증가된 주식에 대해서는 새로운 주식에 대한 명의신탁이어서 이에 대한 증여세 부과가 정당하다고 봤다.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이 사건 상장주식 중 2005년 12월31일 명의개서가 된 부분은 갑의 아버지가 갑 앞으로 명의개서한 최초의 명의신탁 주식이므로 증여로 의제돼 과세할 수 있다고 봤다. 그러나 그 이후 명의개서된 부분은 최초 증여의제 대상이 되는 명의신탁 주식의 매도대금을 사용해 동일인 명의로 재취득된 주식에 해당할 여지가 있어 원칙적으로 다시 증여의제로 과세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①조세회피 목적의 명의신탁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실질과세원칙의 예외로 실제 소유자로부터 명의자에게 해당 재산이 증여된 것으로 의제하는 규정은 조세회피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필요하고도 적절한 범위 내에서만 적용돼야 하는 점 ②증여의제 대상이 돼 과세됐거나 과세될 수 있는 최초의 명의신탁 주식이 매도된 후 그 매도대금으로 다른 주식을 취득해 다시 동일인 명의로 명의개서를 한 경우, 그와 같이 다시 명의개서된 다른 주식에 대해 제한 없이 증여의제 규정을 적용해 별도로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은 최초의 명의신탁 주식에 대한 증여의제의 효과를 부정하는 모순을 초래할 수 있어 부당한 점 ③최초의 명의신탁 주식이 매도된 후 그 매도대금으로 취득해 다시 동일인 명의로 명의개서되는 이후의 다른 주식에 대해 각각 별도의 증여의제 규정을 적용하게 되면 애초에 주식이나 그 매입자금이 수탁자에게 증여된 경우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증여세액이 부과될 수 있어서 형평에 어긋나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최초로 증여의제 대상이 돼 과세됐거나 과세될 수 있는 명의신탁 주식의 매도대금으로 취득해 다시 동일인 명의로 명의개서된 주식은 그것이 최초의 명의신탁 주식과 시기상 또는 성질상 단절돼 별개의 새로운 명의신탁 주식으로 인정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다시 이 사건 법률조항이 적용돼 증여세가 과세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주식 명의신탁은 부동산 명의신탁과 달리 사법적으로 유효해 명의수탁자에게 주식의 소유권이 이전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종래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실질과세원칙의 예외로 허용되는 것으로 판단했고, 나아가 판례는 조세회피 목적을 매우 폭넓게 인정해 명의신탁으로 얻는 경제적 실질이 없는 명의수탁자가 조세회피 목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하면 증여세가 부과되는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이 부당하다는 지적은 계속돼 왔다. 특히 비상장주식에 대한 명의신탁 사례 중 과세를 위해 평가하는 과정에서 명의수탁자가 예상한 가치보다 높게 산정되는 경우에는 증여세 부담이 과한 경우도 많다는 실무상 문제도 있었다.

위 판결은 실질소유자가 명의신탁 주식을 매도한 다음 그 매도대금으로 다시 명의자 명의로 새로운 주식을 취득한 경우에 대해 최초로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제한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유추 해석하거나 확장 해석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위 규정의 적용 범위를 엄격하게 제한하는 입장을 확고히 한 것이다. 이는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엄격하게 해석하려는 대법원의 새로운 해석이라고 평가된다.

■ 조세회피 목적 아니면 증여 과세 신중해야대법원의 ‘2011두10232’ 판결 이전에 명의신탁자가 사망해 명의신탁한 주식이 상속된 경우 명의수탁자가 실제 소유자인 상속인의 명의로 명의개서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적용해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 적이 있다. 즉, 아버지가 임직원 명의를 빌려 주식을 관리하다 사망했는데 상속인인 아들이 자신 명의로 개서하지 않았을 경우 새로운 명의신탁으로 봐 과세할 수 있는지 논란이 된 사안이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새로운 명의신탁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대법원 2017년 1월12일 선고 2014두43653 판결).

대법원은 명의신탁을 증여로 의제하거나 명의개서를 지연한 것을 증여로 의제하는 규정은 재산 보유의 실질과 명의를 일치시키고 조세회피를 방지하는 등의 정책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증여의 실질이 없음에도 증여세를 부과하는 것임을 판단의 전제로 제시했다. 조세 부과의 본질적 근거인 담세력의 징표가 되는 행위나 사실의 존재와 무관하게 과세하는 것이므로 관련 법령의 유추·확장 해석은 엄격하게 절제돼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