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말하고 소리치고 바꾸자"… 광화문에 울려 퍼진 '미투'

세계여성의 날 앞두고 '제34회 한국여성대회'
성폭력 피해 경험 털어놓는 '3·8 샤우팅' 행사에 경찰, 학생, 교수 등 각계 참여
"각계에서 터져 나오는 미투 운동은 극심한 성차별적 사회구조의 결과이자 더 이상의 억압을 거부하는 여성들의 분노의 폭발입니다. 우리는 말하는 모든 이들과 하나며, 침묵을 넘어 변화를 위한 연대의 손을 맞잡을 것입니다."4일 오후 검은색 의상에 '미투(#Me Too), 위드유(#With You)'가 적힌 피켓을 든 여성들이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였다.

이날 오후 12시부터 4시간가량 진행된 이 행사는 세계여성의 날(3월 8일)을 앞두고 한국여성단체연합이 주최한 제34회 한국여성대회. 이날 행사의 최대 화두는 '미투' 운동이었다.

특히 성폭력·성차별 피해자와 지지자들이 나와 자신의 피해 경험을 털어놓고 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는 '3·8 샤우팅' 행사가 열려 눈길을 끌었다.초등학교 때부터 학교에서 성추행을 당했다는 이모(19) 양은 "초등학교 4학년 시절 담임교사가 나를 무릎에 앉히고 여자화장실까지 들어와 몸을 만지는 등 성추행했다"며 "학교 측에 문제를 제기하고 외부 상담교사에 도움을 요청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며 울먹였다.

그는 여학생들에게 교복 치마 착용을 강요하고 치마 길이를 단속한다는 이유로 의자 위로 올라가도록 하는 것도 성차별이라고 지적하면서 청소년이 차별과 폭력으로부터 해방되고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도록 참정권을 보장해달라고 촉구했다.

남자 경찰관으로부터 상습 성추행을 당한 후배 여경을 도우려다 신원이 노출되면서 피해를 본 한 여경도 마이크를 잡았다.20년 경력의 여경인 임모 씨는 후배 여경의 성추행 피해 신고를 도왔지만, 직속상관에 의해 조력자인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면서 앙심을 품은 가해자가 자신을 '꽃뱀 여경'으로 몰고 자신의 업무성과를 조작해 검찰에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는 등 온갖 2차 피해를 겪었다고 했다.

지난 1월부터 사건이 발생한 경찰서 앞에서 1인 시위 중인 그는 "성범죄자를 검거하는 경찰 내에서 성범죄가 일어났는데 이를 축소·은폐하고 조력자의 신원을 공개해 마녀사냥식 따돌림을 받도록 했다"며 "이는 남성 우월주의 계급사회에서 권력의 문제인 동시에 경찰 조직 내 10%도 되지 않는 상대적 약자인 여자가 겪는 피해"라고 말했다.

이밖에도 성균관대 재직 당시 동료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했던 남정숙 전 성균관대학교 교수, 진보정당 내 간부의 성차별적 발언을 지적했다가 비난받은 청소년 당원 등이 무대에 올랐다.대회 참석자들은 '3·8 샤우팅' 행사가 끝난 뒤 '내 삶을 바꾸는 성평등 민주주의를 위한 성폭력 근절', '성평등 헌법 개정', '여성대표성 확대', '성별임금격차 해소', '차별금지법 제정', '낙태죄 폐지' 등의 구호를 외치며 광화문 일대를 행진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작년 한 해 동안 성평등에 기여한 이들에 대한 시상식도 열렸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자와 조력자에 대한 징계는 불법'이라는 대법원 판결을 최초로 끌어낸 르노삼성자동차 성희롱 피해자 박모 씨가 '올해의 여성운동상'을 받았고, 페미니스트 교사 모임 '초등성평등연구회'를 꾸린 최현희 교사, 문단 내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에 불을 지핀 '고발자5'와 연대모임 '탈선' 등 5명(팀)이 '성평등 디딤돌'상을 받았다.

여성을 뽑지 않기 위해 면접순위를 조작한 한국가스안전공사, 직장 내 성폭력 피해 사건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았던 한샘 등 5곳은 '성평등 걸림돌'로 선정됐다.

여성연합은 미투 운동을 통해 성차별적 사회구조를 변혁시키자는 내용이 담긴 '3·8 선언'도 발표했다.

이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여성들의 성폭력 피해 경험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능케 했던 차별과 동조, 침묵의 구조가 문제"라며 이제는 여성들의 외침에 국가가 응답해야 할 차례라고 강조했다.한편, '3.8 샤우팅' 행사는 이날 한국여성대회를 시작으로 전북, 대구, 경남, 경기 등 전국 각지에서 릴레이로 진행될 예정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