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한 삶 일깨운 음식 vs 지질한 사회 민낯… 명품 연극 '앙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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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 18일까지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서 공연
'옥상 밭 고추는 왜' 내달 12~22일 세종M씨어터서

아버지와 아들은 평생 서로의 간극을 좁히지 못했다. 너무 달라서 몰랐고, 모르니 더욱 달라졌다. 시간은 부자(父子)의 아쉬움이나 후회와는 상관없이 흘러 아버지는 임종을 앞둔 힘 없는 노인으로 아들 집에 누웠다. 아들은 서로에게 솔직하지 못했던 순간들을 뒤로하고 아버지를 위한 마지막 한 끼 식사를 준비한다.한국계 미국인 작가 줄리아 조가 극본을 쓴 작품 ‘가지’의 내용이다. 국립극단이 지난해 6~7월 처음 선보인 이 작품을 오는 18일까지 서울 서계동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에서 다시 공연한다. “음식을 소재로, 아버지로 상징되는 한민족의 뿌리를 재발견하는 의미를 지닌 수작”이라는 평과 함께 지난해 12월 제54회 동아연극상 작품상을 받은 연극이다. 초연과 같이 정승현이 연출하고 김재건 김종태 김정호 신안진 우정원 등이 연기한다.

재건축을 앞둔 낡은 빌라에서 개인적이고도 정치적인 갈등들이 터져 나온다. 우악스럽게 한세상을 헤쳐 오면서 나이 든 ‘현자’는 재건축 추진과 관계된 이유로 이웃 ‘광자’를 괴롭히고, “별것들이 다 나서서 노력한 사람들한테 기대 살려고 한다”고 절규한다. 아무것도 되는 일 없이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는 청년 ‘현태’는 같은 빌라 ‘현자’를 향해 분노를 폭발시킨다. 갈등과 혼돈의 실상 그대로를 오래 들여다본다. 그 집요하고 진득한 시선에서 작품의 힘이 나온다.
마지혜 기자 loo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