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의사 눈치보는 보건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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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바이오헬스부 기자 bluesky@hankyung.com“의사단체장 선거를 핑계로 정부가 새로운 건강보험 정책 발표를 늦추면서 애꿎은 환자만 골탕을 먹고 있습니다.”
한 보건의료계 관계자의 말이다.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말로 예정됐던 문재인 정부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정책(문재인케어) 세부안 발표를 이달 이후로 미루기로 사실상 확정했다. 오는 23일 치러지는 대한의사협회 회장 선거가 끝난 뒤 새 집행부와 세부안을 조율하겠다는 것이다.의사협회장 선거에는 여섯 명의 후보가 출마해 치열한 선거전을 펼치고 있다. 이들의 주요 공약은 하나같이 문재인케어 저지다. 병원협회장 선거도 다음달 예정돼 있다. 복지부는 두 의사단체와 의정협의체를 꾸리고 문재인케어 세부안을 논의하고 있다. 하지만 두 단체 선거가 마무리돼야 의정협의체에서 도출한 협의안이 효력을 가질 것이라는 게 복지부 판단이다.
보건의료계에서는 “의사 눈치 보기가 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온다. 지난해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의료비 걱정 없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발표한 지 7개월이 넘도록 세부안조차 마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문재인케어 이해당사자인 의사 목소리를 듣겠다는 취지는 공감한다. 그러나 새 집행부가 들어선다고 해도 복지부가 의료계와 이견을 좁힐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의정협의체는 지금까지 아홉 차례 만났다. 이달 말 열 번째 회의를 연다. 하지만 양측은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의정협의체 구성 과정도 깔끔하지는 않았다. 복지부는 지난해 12월 대규모 의사 시위가 벌어진 뒤에야 부랴부랴 의정협의체를 꾸렸다. 건강보험 보장성 문제는 의사뿐 아니라 치과의사, 한의사 등 다양한 직업군과 관련이 있다. 의정협의체 협의안이 마련되더라도 또 다른 반대 시위가 없으리라고 장담할 수 없다. 정부는 다시 협의체를 꾸려야 할지 모른다.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의사들만 신경 쓰느라 정작 건강보험료를 내는 국민은 논의의 장에서 배제됐다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복지부가 의사 만능주의에 빠졌다”는 보건의료계 비판을 새겨들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