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6000만원으로 2년 만에 4억짜리 내 집 마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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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집 마련 성공기(14)평범한 맞벌이 부부가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을까. 대기업에 다니는 K씨(36)는 여느 보통 사람들처럼 절대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금수저’는커녕 ‘은수저’나 ‘동수저’조차 되지 않았던 까닭이다. 2014년 결혼 당시 아내와 탈탈 털어 모은 목돈은 6000만원이 전부였다.
경기 고양시 행신동 신혼 집 장만해 발판
전용 40㎡ 신혼집, 3년 만에 84㎡로 '점프'
신혼집으로 알아봤던 곳은 합정역 인근 신축 빌라였다. 부부의 직장이 종로여서 접근성이 좋은 데다 주변 환경도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별로 대단할 것도 없어 보이는 빌라의 전셋값이 2억~2억5000만원 정도였다. 평생 아파트에만 살았던 터라 빌라 전세에 이처럼 큰 돈을 들이는 게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의 생각도 같았다.30대 초반의 여느 신혼부부처럼 신도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우선 눈에 띈 건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에 자리잡은 준공 20년차 아파트였다. 전용면적 40㎡ 전세가격이 1억4000만원이었다. 회사에서 지원하는 전세대출을 낀다면 무리가 없어 보였다. 그런데 가만 보니 매매가격과 전세가격이 비슷했다. 2000만~3000만원 정도를 더 얹으면 아예 사버릴 수 있었다.
어차피 서울을 벗어나 신혼생활을 시작하는 만큼 기왕이면 내 집에서 시작하자는 생각에 매수를 결정했다. 둘이 열심히 벌어 한 사람 연봉만큼 저축하면 대출금도 무난히 갚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목돈 6000만원에 회사 대출과 시중은행 담보대출을 보탰다. 금리가 1년 변동으로 연 3.05%였는데 나중엔 연 2.37%까지 떨어졌다.
신혼 첫 집이라서일까. 운도 따랐다. 낡은 아파트 값이 1년 반 만에 6000만원 정도 올랐다. 서울에서 밀려난 이들이 꾸준히 행신동으로 유입된 영향이 컸다. 경의선이 중앙선과 연결되면서 서울 홍대입구와 공덕, 용산 등으로 한번에 오갈 수 있게 된 점도 호재로 작용했다.계산기를 두드려보니 순자산이 1억7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종잣돈 6000만원에 시세차익이 6000만원, 그동안 저축한 돈이 5000만원이었다.자산만 불어난 게 아니라 식구도 늘었다.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세 식구가 살다 보니 옛 19평대 아파트로는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하반기부터 틈날 때마다 3억원 중반대의 전용 59㎡ 안팎 아파트를 찾아봤다. 처가가 있는 은평뉴타운에 마음이 끌렸다. 아이를 키우려면 집안 어른들의 도움도 받아야했던 까닭이다.
당시 은평뉴타운 A아파트 전용 59㎡의 시세 3억8000만원가량이었다. 담보인정비율(LTV) 규제 전이라 60% 정도 대출이 가능했다. 은행에서 2억원 정도를 빌리고 연 이율 3%를 가정한다면 1년 이자는 600만원 정도였다. 월세 50만원을 내고 사는 것과 비슷했다.그러나 한 차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한 번의 성공에 취해 쉽게 생각한 게 화근이었다. 그때는 은평뉴타운과 인접한 삼송·원흥·지축지구에 신축 아파트가 줄줄이 입주할 때였다. 중개업소에 “이들 아파트가 입주하면 집값이 떨어질 테니 호가가 2000만~3000만원 정도 떨어지거든 연락하라”고 단단히 일렀다. 당시 3억8000만원짜리 집이 3억5000만~3억6000만원으로 떨어지면 사겠다는 계산이었다.
패착이었다. 몇 달 지나고 나니 중개업소에서 4억2000만원을 불렀다. 내리기는 커녕 4000만원이나 올라버렸다. 예상이 빗나간 이유는 수요와 공급이었다. 은평뉴타운 전체 1만5000가구 중에 일반분양된 가구는 9600여 가구다. 이 중 전용 59㎡ 안팎은 800가구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부르는 게 값일 수밖에 없었다.한숨을 쉬자 중개업소에선 B아파트 전용 84㎡ 매물이 4억3000만원에 나왔다고 소개했다. 구석에 박힌 뒷동에 필로티 구조의 2층이었다. 둘러보니 햇볕도 잘 들지 않았다. 아내도 시큰둥했다. 고민하는 동안 집주인은 호가를 1000만원 더 올렸다.
우리가 탐탁지 않은 기색을 보이자 중개업소에선 훨씬 좋은 동의 같은 면적 집을 4억6000만원 정도에 보여줄 수 있다고 제안했다. 은평뉴타운에서 처음으로 고려했던 집보다 면적과 가격 모두 크게 올랐지만 일단 가서 보자 마음이 동했다.
그런데 전세 3억원을 끼는 조건이었다. 매매를 미뤘다가 가격이 오른 경험을 한 직후라 마음이 급해졌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했다.
그동안 행신동 집에 대한 담보대출을 충실히 줄여왔고 마침 집값이 2억2000만원 정도로 오르면서 한도가 늘었다. 대출을 증액하면 8800만원 정도 마련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그동안 모았던 5000만원을 포함해 사회초년생 때부터 넣던 변액보험과 적금을 해지했다. 부부가 마이너스통장도 하나씩 만들었다. 그렇게 마련한 자금으로 일단 계약을 했다. 일시적 2주택이 된 것이다.
그러다 행신동 집을 매각하고 그 자금에다 새 집을 담보로 대출을 일으켜 세입자 전세 보증금을 내줬다. 매수 후 7개월을 기다려 입주할 때 매매가격이 5억원을 넘어가고 있었으니 서두른 덕에 수천만원의 돈을 아낄 수 있었던 셈이다.전용 40㎡에서 시작한 신혼집을 전용 84㎡까지 두 배로 늘리는 데 3년 남짓 걸렸다. 주변에선 운이 따랐다고 말한다. 그건 맞다. 분명한 상승장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의 아파트 거래로 돈을 벌었다는 자랑을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더 좋은 환경, 더 좋은 집으로 옮기는 ‘주거 사다리’의 경험은 전세로 살았다면 할 수 없는 것들이다. 전세를 고집했다면 맞벌이로 힘들게 모은 돈을 고스란히 전세금 올려주는 데 썼을 것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집을 사지 않았다면 서울에 내집마련을 하는 것이 가능했을까.
매매가 아니었다면 전용 84㎡ 아파트를 살 때 담보대출을 받을 기반이 없었고 1억원 중후반대의 목돈으론 도저히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안정적 주거환경을 갖춘 까닭에 아이의 교육에 대한 고민이 생기기 전까지는 이사를 고려하지도 않게 됐다. 지금 집에 돈을 더 보태 옮겨야 한다는 고민도 당분간은 없을 것이다.집값의 70~80%에 달한 전세를 레버리지로 이용해 마음만 먹으면 내집마련을 할 수 있는데도 집을 사길 꺼리는 이들이 아직 주변에 많다. 이들은 집값이 떨어지면 사겠다고 한다. 대부분은 나중에도 사지 못한다. 2년마다 이삿짐을 쌀 뿐이다. 내집마련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루라도 빨리 내 집을 마련하는 것이다.
정리=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