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바다밑 지도 가장 싸고 빠르게 그려라"… '쥘 베른의 꿈' 실현될까

로열더치셸·엑스프라이즈재단 700만弗 경진대회

해저지형 85%가 미지의 세계
美·獨·日·英 등 9개 팀 예선통과
드론·무인함정·수중로봇 등 활용
2030년 초정밀 지도 완성 계획
무인잠수정이 해저 지형을 탐사하는 상상도.
프랑스 소설가 작가 쥘 베른이 1869년 발표한 《해저2만리》에서는 당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깊은 바닷속 세계가 펼쳐진다. 그로부터 150여 년이 흐른 지금 인류는 과연 얼마나 깊은 심해에 다가섰을까. 인류는 1969년 미국 우주인을 실은 아폴로 11호가 지구에서 38만㎞ 떨어진 달에 착륙한 이후 이제는 화성 유인탐사까지 넘보고 있지만 정작 해수면 아래 세계는 아직도 미지 영역으로 남아 있다. 사람이 직접 눈으로 바다 밑을 볼 수 있는 깊이는 수심 332m가 최대치고 심해잠수정을 타고가도 10㎞ 이하로는 못 가기 때문이다. 그것도 인류가 볼 수 있는 아주 일부일 뿐이다. 바다 밑 해저 지형의 85%는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다.

다국적 석유화학회사 로열더치셸(셸)과 인류 상상력을 자극하는 대회를 여는 비영리기구 엑스프라이즈재단이 베른의 꿈을 현실로 만들어줄 과학자들에게 막대한 금액의 상금을 걸었다. 이번에는 바다다. ‘셸 오션 디스커버리 엑스프라이즈’로 불리는 이 대회는 인류의 삶에 가장 가까우면서 미지 세계로 남아 있는 바다 밑 해저지형도를 가장 값싸고 빠르게 완성할 기술을 선보일 팀에 700만달러의 상금을 준다.15%만 아는 바닷속 여전히 ‘깜깜이’

무인잠수정이 해저 지형을 탐사하는 상상도.
엑스프라이즈재단은 구글, 퀄컴 등 주요 기업과 인간의 꿈과 상상을 자극하는 경연대회를 열어왔다. 구글과는 2007년부터 민간 달 탐사 경연대회인 구글 루나 엑스프라이즈를 공동 개최했고 지난해엔 미국 반도체회사 퀄컴과 SF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첨단 진단장치 개발 실력을 겨루는 트라이코더 엑스프라이즈라는 대회를 공동 개최했다.첫 예선에는 전 세계 19개 팀이 참가했지만 결국 최종 결선에는 9개 팀이 올라왔다. 결선에 진출한 팀은 오는 10~11월에 걸쳐 수심 4000m에서 각자 개발한 기술을 시연해야 한다. 죠티카 비르마니 엑스프라이즈재단 지구환경책임자는 “참가팀은 24시간 동안 250㎢에 이르는 면적에 걸쳐 해저 지도를 완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최 측이 요구한 해저 지형도의 정밀도 기준은 매우 높다. 가로·세로 각각 5m인 면적이 지도상 한 점으로 나타나야 한다. 주최 측은 참가팀이 실제 기술을 시연할 해역을 아직 비밀에 부치고 있다.

영국 뉴캐슬대와 해저장비전문회사 SMD(소일머신다이내믹스), 중국의 중처(中車)그룹 연구진으로 구성된 팀타오(Team TAO)는 바닷속을 누비며 해저지형 정보를 수집하는 무인잠수정(수중 로봇)을 개발하고 있다. 길이 12m에 이르는 무인함정이 심해중층탐사선(BEM)으로 불리는 소형 수중 로봇 24기를 싣고 다니다가 해저지도를 그려야 할 위치에 도착하면 로봇을 투입하는 방식이다. 흡사 어뢰처럼 보이는 로봇은 한 시간가량 바닷속을 빙빙 돌면서 지형 정보를 수집한다. BEM에는 수중 음파 탐지기, 카메라를 비롯해 바닷물 온도와 염분을 측정하는 각종 센서가 장착됐다. 특히 이 로봇은 바다 밑 가로·세로 50㎝ 면적을 한 점으로 인식할 수 있다. 로봇이 탐지한 해저 지형 정보는 곧바로 통신장비를 통해 지도를 제작하는 서버로 전송된다. 연구진은 이렇게 시스템 하나를 구축하는 데 드는 비용이 100만파운드(약 14억7000만원)에 불과하다고 설명했다. 지도 제작비도 대형 조사선을 투입해 같은 면적을 조사했을 때보다 100분의 1밖에 들지 않는다.

2030년까지 정밀한 전 세계 해저지도 완성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진이 참여한 아르고노트와 미국 듀크대가 주도하는 블루데빌오션 엔지니어링, 일본의 대학과 연구소 연구진이 참여한 쿠로시오, 미국 텍사스 A&M대 해양공학과 등 쟁쟁한 팀이 결선에 올랐다. 팀이 밀고 있는 기술도 드론(무인항공기)을 비롯해 수중로봇, 수상 무인함정 등 다양해 최종 우승팀이 어떤 방식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시장 판도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대양수심도위원회(GEBCO)는 일본재단(NF)의 후원을 받아 정밀한 해저 지도를 완성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지금까지 작성된 가장 정확한 지도는 인공위성이 중력 관측을 통해 지형을 추정해 그린 것이다. 중력이 측정한 지점의 고도나 주변 지형에 따라 값이 달라지는 원리를 이용한 방식이다.

하지만 정밀도가 떨어져 가로·세로 1㎞ 이하 지형은 식별하지 못한다. 이번에 결선에 오른 ‘GEBCO-NF 앨럼니팀’도 GEBCO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한 전 세계 12개 팀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이번 대회 결과에 상관없이 2030년까지 정밀도를 100배 끌어올린 해저지도를 구축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팀타오 역시 대다수 부품을 상용 제품을 가져와 쓰는 방식으로 개발비를 떨어뜨렸다. SMD와 뉴캐슬대는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독자적인 사업에 착수하겠다는 계획이다. 현재 하루에 200㎢ 넓이의 바다 지도를 그릴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주최 측은 내년 상반기 최종 수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2030년까지 충분한 시간이 남아 있다는 점에서 수상한 팀의 기술이 활용될 여지가 높다고 주최 측은 설명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