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구의 소수의견] "골목길, 보존할 전통 아닌 도시의 미래"

'골목길 경제학자' 모종린 연대 교수 인터뷰
골목길은 라이프스타일 집약된 도시 문화자원
"젠트리피케이션 못지않게 듀플리케이션도 문제"
지난 5일 한경닷컴과 인터뷰한 모종린 연세대 교수는 골목길의 경제적 가치를 강조했다. / 사진=변성현 기자
홍대, 가로수길, 연남동, 성수동, 익선동… ‘뜨는 상권’은 늘 골목길이었다. 아기자기, 오밀조밀, 천천히 걸으면 여기저기서 특색 있는 감성과 취향을 담은 볼거리, 먹거리, 즐길 거리가 손짓해오는 곳. 쭉 뻗은 대로와 고층빌딩이 빽빽한 신도시와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왜 그럴까. 궁금증을 느낀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사진)는 전국의 골목길을 찾아다녔다. 그가 바라본 골목길의 요체는 ‘라이프스타일이 집약된 문화자원’이다. 흔히 떠올리는 골목길 이미지와는 거리가 있다. “제가 얘기하는 골목길은 좀 달라요. 사람과 돈이 모이는 새로운 문화발전소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죠. 도시 라이프스타일의 ‘전시장’이랄까요.”- 골목길은 단일하지 않다?

“골목길 하면 추억의 장소, 보존해야 할 전통, 대기업으로부터 보호해야 할 대상, 이렇게들 생각한다. 그건 주거환경 개선이 필요한 낙후지역 골목길이다. 나눠서 접근해야 한다. 제가 가꿔나가야 한다고 말하는 골목길은 사람과 돈이 모이는 문화·관광자원으로서의 골목길이다.”

- ‘개발자원’이라는 건데 저항감이 들지 않을까.“개발시대처럼 기존에 있던 걸 부수고 똑같은 아파트촌, 고층빌딩 세우는 식으로 하자는 게 아니다. 골목길의 고유한 특색을 살려 잘 개발하자는 뜻이다. 그러려면 공급과 수요, 거래비용, 시장실패 등 경제학적으로 분석해 골목길을 살리는 정책적 노력이 필요하다.”

- 왜 지금 골목길인가.

“젊은이들이 왜 교토·방콕 같은 곳으로 여행 간다고 생각하나. 문화재 보러? 아니, 문화를 즐기러 가는 거다. 골목길엔 매력적인 감성과 생활문화, 이야기가 살아 숨쉰다. ‘다운타운(도심) 라이프스타일’의 수요가 커졌다. 로컬이 곧 글로벌이며, 골목길이 지금 한국의 대표 라이프스타일 상품이다.”- 확실히 요즘은 “일본으로 여행 간다”고 하지 않는다. 도쿄·오사카·오키나와 등의 지명을 대고 시부야·기치조지·에노시마 같은 목적지를 정한다.

“도시문화 중심으로 관광 트렌드가 바뀐 거지. 일본은 생활문화 자체가 관광자원이 된 곳이 많다. 우리도 자원은 충분하다. 이태원 중심 남산권부터 삼청동 중심 다운타운권, 홍대권, 성수권까지 서울의 4대 골목권역이 대표적이다. 골목길을 훼손하자는 게 아니라 정체성을 살려 개발하자는 것이다.”

최근 《골목길 자본론》을 펴낸 모 교수. '골목길 경제학자'란 별칭으로 불린다. / 사진=변성현 기자
-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비슷한 것 같다. 지역축제들도 그렇고….

“붕 뜬 지역축제가 많아서 그렇다. 주민들에게도 생소한 아이템의 축제가 잘 될 리 있나. 생활문화와 밀착·연결돼야 한다. 한국이 어느 곳이든 비슷하다는 얘기엔 동의하지 않는다. 무관심해서 그렇게 느끼는 거다. 관심과 애정을 갖고 들여다보면 가능성 있는 곳은 많다.”

- 어디가 그런가?

“대구를 보자. 보수적 도시란 관념이 있지만 실제로는 청년문화가 잘 형성돼 있다. ‘단일 도심의 소상공인 집적’ 영향이 크다. 대구는 대도시 중 유일하게 단일 도심 체제를 유지했다. 대구에서 ‘시내’는 동성로 한 곳이다. 한 곳에 집중된 상권이 전통시장 공구거리 명품거리 카페거리 등 다양한 도시문화의 체험과 융합을 가능케 했다.”

- 전작 《라이프스타일 도시》에서 “사람들은 경주를 그리워하긴 하지만 그곳에서 살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다”고 썼다. 의미 있는 지적이다.

“경주에 부족한 건 문화재가 아니다. 문화재를 활용한 도시문화가 부족한 거지. 황리단길이 있긴 한데 아직 많이 부족하다. 정부도 ‘온 국민이 불국사는 한 번씩 가봤으니 새 문화재를 발굴하자’ 식으로 접근할 일이 아니다. 그렇게 투자하면 미스매치가 생긴다. 인식을 바꾸자.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경주의 특성을 살린 생활문화 공간을 만드는 작업이다. 불교도시니까 사찰음식 등 채식을 키운다든지…. 마찬가지로 전주는 한식·한옥·한복, 포항은 철강, 군산은 사케를 비롯한 양조장 문화 등에 집중해 도시문화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나.

“골목상권의 정체성을 만드는 ‘소상공인 영웅’이 많아져야 한다. 일본의 경우 장인학교나 도제교육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국내에는 이런 프로그램이 없다. 골목길 문화는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신 시스템은 마련할 수 있다. 스타트업 수준의 ‘골목길 스타 비즈니스’를 고민할 때다.”

그가 최근 펴낸 《골목길 자본론》은 정서적 공간인 골목길을 경제적 가치로 재해석한 만큼 통념과 다른 부분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젠트리피케이션(낙후 구도심 활성화로 임대료가 상승해 세입자 등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 못지않게 듀플리케이션(복제)을 우려하는 대목이 그렇다.

-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관점이 인상적이다.

“정겹고 세련된 데다 가격까지 저렴한 그런 골목상권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고급화된 골목상권이냐, 재개발된 신도시냐.”

- 전자가 젠트리피케이션, 후자가 듀플리케이션.

“골목길 활성화의 핵심이 고급화·개성화·전문화다. 고급화는 투자를 통한 발전의 결과물이다. 3요소 중 고급화 진행속도가 너무 빨라 나머지 두 요소가 사라져버리면 문제지만. ‘완만한 젠트리피케이션’은 불가피한 면이 있다고 본다.”

모 교수는 젠트리피케이션 못지않게 듀플리케이션을 우려했다. / 사진=변성현 기자
- 제가 신도시에 사는데 아파트단지나 상가나, 뭐랄까 개성이 없다.

“듀플리케이션에는 라이프스타일이 스며들지 않는다. 세련될지는 몰라도 특색이 없다. 지금 시대엔 통하지 않는다. 문화는 신도시가 아니라 구도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자동차가 씽씽 달리는 대로보다 사람들이 걸으면서 눈 맞출 수 있는 좁은 골목길에 미래가 있다.”

- 아우라(독특한 분위기)의 부재라는 얘긴가.

“우리 사회는 아직 대량생산 대량소비,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 기술근본주의의 늪에 빠져있다. 글로벌 키워드는 ‘탈물질주의 경제’다. 획일화되지 않은 개성, 삶의 질, 다양성 같은 요소들이 환영받는다. 그런 지역문화의 원천이자 보고(寶庫)가 바로 골목길이다.”

- 젠트리피케이션은 결국 시장이 해결할 문제로 보는 것이냐.

“그렇다. 특정 주체를 보호하는 식의 정부 규제에 의존한 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정한 룰 세터(rule setter)의 제한된 역할만 맡아야 한다. 이제 어느 정도 학습효과도 생겼을 것이다. 골목길 분위기를 만들고 이어가기 위한 건물주와 임차인의 상생협력 ‘유인’이 있거든.”

- 일종의 생태계, 공동체 형성이 중요하다는 거구나.

“시장이 해결할 문제라 해서 경쟁일변도가 돼야 한다는 건 아니다. 지나친 규제 없이도 젠트리피케이션을 풀어나가는 다양한 창의적 사례가 나올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유휴공간을 젊은 창업가에 저렴하게 임대해준다든가.”

10년 전쯤 모 교수를 인터뷰한 적 있다. 연세대가 ‘한국의 아이비리그’를 표방하며 설립한 언더우드국제대학 초대 학장으로서였다. 같은 장소(연세대 새천년관)에서 만났었다. 모 교수의 책을 읽으며 기억 속 이미지를 더듬다가, 그가 골목길에 관심을 갖게 된 배경이 문득 궁금해졌다.

-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경제학자로서의 관심이 출발점이었다. 2010년 이후 불경기에 빠지면서 신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 세계화의 반작용으로 특색과 개성을 지닌 지역문화·자원·산업 등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라이프스타일 경제’의 경쟁력을 빨리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 《작은 도시 큰 기업》 《라이프스타일 도시》 《골목길 자본론》. 그동안 저술한 ‘라이프스타일 3부작’이 그 결과물인가.

“세계적 기업을 키워낸 작은 도시의 비밀은 뭘까? 첫 책인 《작은 도시 큰 기업》에 그 내용을 담았다. 그걸 한국 상황에 응용한 게 《라이프스타일 도시》다. 스타벅스 하면 시애틀, 옷 갈아입는 시간도 아까워하는 저커버그까지 두 시간 출근길을 감수하며 사는 샌프란시스코…. 이러한 도시 기반 사례를 보여주고 싶었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초기라 케이스가 많지 않지만 이니스프리와 제주 같은 경우 잘 연결돼 있다고 본다. 결국 라이프스타일의 문제고 도시 골목길이 그 전시장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골목길을 이번 책의 주제로 삼았다.”

- 책을 읽으면서 ‘여길 전부 다 가봤단 말이야?’ 싶더라.

“실제로 모두 가봤다. 골목길 들여다보는 걸 즐기기도 하고…(웃음). 골목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자본을 적절하게 활용해야 한다고 결론 내렸다.”
모 교수는 "골목길은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 집약된 문화자원"이라고 강조했다. / 사진=변성현 기자
-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과 마강래 중앙대 교수가 쓴 〈지방도시 살생부〉를 읽으면서 맞는 얘기다 싶으면서도, 한편으로 답답했다. 구체적 대안이 잘 안 보인다고 할까. 그런 점에서 라이프스타일을 대안으로 뽑아내고 골목상권을 방편으로 제시한 게 인상적이었다.

“대안 중심으로 작업했다. 공통점이나 일반적 조건을 추려내는 이론화 작업 못지않게 각각의 특색을 갖는 현실적 대안 제시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가 주장하는 바는 이 문장에 집약돼 있다. ‘도시 라이프스타일이 우리 경제의 미래다.’ 골목길 산업을 미래 창조산업, 문화산업으로 만들어가야 한다.”

- 골목길이 지방소멸 문제를 푸는 방편이 될 수 있을까.

“지방 도시들의 집중력이 훼손된 여파가 크다. 신도심 만든다면서 시청 옮기고 교외에 혁신도시 조성하고 외곽에 KTX역 만들고… 그러고선 구도심 죽었다고 다시 거기에 투자한다. 그러면 안 된다. 모아야 한다. 이른바 ‘콤팩트 시티(압축도시)’의 구체적 대안이 도심 골목길에 있다.”

- 모으는 것만이 살 길이다?

“지방소멸을 인구가 준다든지 고향이 사라진다든지, 표피적으로만 보면 안 된다. 지방이 그냥 죽을 것 같나? 그 과정이 비극적이다.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나 미국의 러스트 벨트(쇠락한 공업지대) 등등… 포퓰리즘이 그런 배경에서 나온다. 지역공동체가 죽으면 나라가 망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 도심에 집중하자, 특색 있는 골목길이 살린다, 이렇게 정리되는데.

“문화자원을 도심에 집중해야지. 젊은이들이 외곽에 살지 않고 도심에 거주하며 문화를 즐기려는 트렌드는 세계적 현상이다. 체계적 육성이 필요하다. 특히 부산이 안타깝다. 부산에는 개발 가능한 골목길 자원이 많다. 특색도 뚜렷하고. 그런데 ‘해운대 신화’에 빠져 제2, 제3의 마린시티로 방향을 잡는 것 같다.”

- 궁극적으로 ‘사람 중심 도시’를 지향하자는 건가.

“대기업·공장 도시에서 벗어나 보행자와 소상공인 중심의 휴먼 시티를 목표로 해야 한다. 어떤 모습의 도시에서 살지 사회적으로 진지하게 토의할 때가 되었다.”[김봉구의 소수의견]은 통념이나 대세와 거리가 있더라도 일리 있는 주장, 되새겨볼 만한 의견을 소개하는 기획인터뷰입니다. 우리사회의 다양한 작은 목소리를 담아보려 합니다. <편집자 주>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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