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킹 두차례 한국 찾아… 소광섭 교수 "모짜르트 같은 천재"
입력
수정
"모든 논문 읽고 외워서 연구하고 책 썼다"
"인간적으로 모범이 되는 분이고 위대한 분이셨는데 돌아가셨다니 마음이 참 그렇네요.애도를 표합니다."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14일 들은 소광섭 서울대 물리교육과 명예교수는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밝혔다.
소 교수는 호킹 교수와 가장 친분이 깊은 한국 학자 중 한 명이다.그는 1990년 9월 호킹 교수가 처음으로 방한했을 때 통역과 안내를 맡았으며, 이듬해 봄학기까지 1년간 케임브리지의 호킹 교수 연구실에 방문교수로 있으면서 학문적·인간적 교류를 했다.
소 교수는 호킹 교수의 가장 큰 업적으로 블랙홀에 관한 연구 두 건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블랙홀의 면적에 관한 '호킹 면적 정리'(Hawking's area theorem)의 증명과 블랙홀에서의 양자복사 법칙을 밝힌 점이다.호킹 정리에 따르면 블랙홀 두 개가 합쳐질 때 그 면적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이거나 더 커져야 한다.
이는 양자역학적 결과가 아니라 고전역학적으로 풀이한 결과다.
이와 달리 블랙홀에서의 양자복사 법칙은 양자역학적 결과다.소 교수는 "(호킹 교수의 연구가 나오기 전) 옛날에는 블랙홀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서 다시 나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의 관점에서 보면 블랙홀에서도 빛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라고 불린다.
소 교수는 "일반상대론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블랙홀에 관한 이 두 가지 법칙을 발견한 것이 호킹 교수의 가장 큰 업적"이라며 "그렇게 큰 일을 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평가했다.
소 교수는 "케임브리지의 그 양반(호킹 교수) 연구실에 1년간 방문교수로 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몸이 아픈데도 세미나에 열성적으로 참석하고, 굉장히 유머가 많고 인간적으로 훌륭한 분"이라며 "장애인이라고 해서 높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대단히 활동적이시고 휴식 시간에 농담도 잘 하더라"고 당시 호킹 교수의 쾌활한 분위기를 전했다.
소 교수는 "정말 이 사람(호킹 교수)이 대단하구나 생각한 게,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데 그 많은 논문들을 다 읽고 몽땅 외워서 자기 논문도 쓰고 책도 쓰더라는 것"이라며 "마치 모차르트가 오페라나 레퀴엠을 머리 속에서 작곡해서 다 넣어 놓았다고 하듯, 모차르트와 같은 그런 천재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호킹 교수는) 종종 사람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파티를 열어서 즐거운 시간도 가지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활동적으로 일상 생활을 하고 (삶을) 즐겼다"고 전했다.
소 교수는 호킹 교수가 평소에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출퇴근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간호사가 있긴 했지만 출퇴근은 가급적 혼자서 했다"며 "호킹 교수의 집과 캠퍼스가 걸어서 30분 거리였는데, 출퇴근은 그 양반 고유의 휠체어를 타고 늘 다녔다"며 "거의 모든 행동을 혼자서 했다"고 말했다.
호킹 교수는 생전에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1990년 9월 주간지 '시사저널'의 초청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해 서울대와 신라호텔에서 '우주의 기원'과 '블랙홀과 아기우주'를 주제로 강연했다.
당시 소 교수는 호킹 교수 연구실에 방문교수로 갈 예정이 잡혀 있었던 인연으로 방한시 통역과 안내를 맡았다.
소 교수는 "호킹 교수가 출국하는 날이었는데 홍수가 나서 비행기가 거의 못 뜰 형편이었고 공항까지 가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경찰이 교통정리를 해 주는 등 극진히 대접해서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되새겼다.
호킹 교수는 2000년 8월말부터 9월초까지 10박 11일 일정으로 한국을 다시 찾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만나고 청와대에서 '간략히 살펴본 우주'(Universe in a nutshell)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삼성전자도 강연차 방문했다.호킹 교수는 두번째 방한 당시 서울대와 고등과학원이 제주에서 공동 주최한 '세계 우주과학학술대회'(COSMO 2000)'에 참가해 '삼차원 이상의 새로운 공간에 관한 우주론'에 관한 특별강연을 했다.
/연합뉴스
"인간적으로 모범이 되는 분이고 위대한 분이셨는데 돌아가셨다니 마음이 참 그렇네요.애도를 표합니다."
스티븐 호킹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별세했다는 소식을 14일 들은 소광섭 서울대 물리교육과 명예교수는 안타까운 마음을 이렇게 밝혔다.
소 교수는 호킹 교수와 가장 친분이 깊은 한국 학자 중 한 명이다.그는 1990년 9월 호킹 교수가 처음으로 방한했을 때 통역과 안내를 맡았으며, 이듬해 봄학기까지 1년간 케임브리지의 호킹 교수 연구실에 방문교수로 있으면서 학문적·인간적 교류를 했다.
소 교수는 호킹 교수의 가장 큰 업적으로 블랙홀에 관한 연구 두 건을 꼽았다.
구체적으로는 블랙홀의 면적에 관한 '호킹 면적 정리'(Hawking's area theorem)의 증명과 블랙홀에서의 양자복사 법칙을 밝힌 점이다.호킹 정리에 따르면 블랙홀 두 개가 합쳐질 때 그 면적은 줄어들지 않고 그대로이거나 더 커져야 한다.
이는 양자역학적 결과가 아니라 고전역학적으로 풀이한 결과다.
이와 달리 블랙홀에서의 양자복사 법칙은 양자역학적 결과다.소 교수는 "(호킹 교수의 연구가 나오기 전) 옛날에는 블랙홀에 모든 것이 빨려 들어가서 다시 나오지 않는다고 했는데, 양자장론(quantum field theory)의 관점에서 보면 블랙홀에서도 빛이 나올 수도 있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라고 불린다.
소 교수는 "일반상대론적 관점에서 매우 중요한 블랙홀에 관한 이 두 가지 법칙을 발견한 것이 호킹 교수의 가장 큰 업적"이라며 "그렇게 큰 일을 한 사람이 별로 없다"고 평가했다.
소 교수는 "케임브리지의 그 양반(호킹 교수) 연구실에 1년간 방문교수로 있을 때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몸이 아픈데도 세미나에 열성적으로 참석하고, 굉장히 유머가 많고 인간적으로 훌륭한 분"이라며 "장애인이라고 해서 높이 평가하는 게 아니라, 대단히 활동적이시고 휴식 시간에 농담도 잘 하더라"고 당시 호킹 교수의 쾌활한 분위기를 전했다.
소 교수는 "정말 이 사람(호킹 교수)이 대단하구나 생각한 게, 손가락 하나도 제대로 못 움직이는데 그 많은 논문들을 다 읽고 몽땅 외워서 자기 논문도 쓰고 책도 쓰더라는 것"이라며 "마치 모차르트가 오페라나 레퀴엠을 머리 속에서 작곡해서 다 넣어 놓았다고 하듯, 모차르트와 같은 그런 천재에 가까웠다"고 말했다.
그는 "(호킹 교수는) 종종 사람들을 초대해서 집에서 파티를 열어서 즐거운 시간도 가지고, 휠체어를 타고 다니면서도 활동적으로 일상 생활을 하고 (삶을) 즐겼다"고 전했다.
소 교수는 호킹 교수가 평소에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출퇴근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간호사가 있긴 했지만 출퇴근은 가급적 혼자서 했다"며 "호킹 교수의 집과 캠퍼스가 걸어서 30분 거리였는데, 출퇴근은 그 양반 고유의 휠체어를 타고 늘 다녔다"며 "거의 모든 행동을 혼자서 했다"고 말했다.
호킹 교수는 생전에 두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1990년 9월 주간지 '시사저널'의 초청으로 3박 4일 일정으로 방한해 서울대와 신라호텔에서 '우주의 기원'과 '블랙홀과 아기우주'를 주제로 강연했다.
당시 소 교수는 호킹 교수 연구실에 방문교수로 갈 예정이 잡혀 있었던 인연으로 방한시 통역과 안내를 맡았다.
소 교수는 "호킹 교수가 출국하는 날이었는데 홍수가 나서 비행기가 거의 못 뜰 형편이었고 공항까지 가는 것도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경찰이 교통정리를 해 주는 등 극진히 대접해서 무사히 출국할 수 있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고 되새겼다.
호킹 교수는 2000년 8월말부터 9월초까지 10박 11일 일정으로 한국을 다시 찾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을 만나고 청와대에서 '간략히 살펴본 우주'(Universe in a nutshell)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삼성전자도 강연차 방문했다.호킹 교수는 두번째 방한 당시 서울대와 고등과학원이 제주에서 공동 주최한 '세계 우주과학학술대회'(COSMO 2000)'에 참가해 '삼차원 이상의 새로운 공간에 관한 우주론'에 관한 특별강연을 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