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강한 러시아" 앞세운 '차르'… 첫 행보로 크림반도 병합 기념식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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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4기 '차르' 푸틴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18일(현지시간) 치러진 러시아 대선에서 압승을 거뒀다. 지난해 12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때부터 ‘스파이 독살’을 놓고 서방과 정면 대립하면서 ‘강한 러시아’의 면모를 일관되게 과시해온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이번 선거로 4선에 성공한 푸틴 대통령이 최근 장기 집권의 토대를 마련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 함께 ‘미국 중심주의’를 앞세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대립하는 구도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크림반도 병합 4주년 기대 이상 압승19일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발표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76.65%(99% 개표시점 기준)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승리했다. 2위 파벨 그루디닌 공산당 후보(11.82%), 3위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 자유민주당 후보(5.68%)를 60%포인트 이상 앞질렀다.
푸틴 대통령, 76% 압도적 지지로 4선 성공
대선전 영국서 '스파이 독살 시도'
서방과 갈등 구도 호재로 작용
투표율 예상보다 10%P 높아져
시진핑, 푸틴 당선 되자마자 축전
중·러, 대미 공동전선 강화될 듯
푸틴 대통령의 재선은 누구나 예상했지만 기대 이상의 결과라는 평가가 많다. 득표율과 투표율 측면에서 역대 어느 대선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푸틴 대통령을 지지한 것으로 집계된 이들의 수는 5540만 명을 넘어섰다. 푸틴 대통령은 2012년 대선에서 4560만 표(63.6%), 2004년 대선에서 4956만 표(71.3%)를 얻었다. 엘레나 팜필로바 러시아중앙선관위 위원장은 “투표율이 2012년 대선(65.25%)보다 높을 것”이라고 전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당선에 상징적인 제스처로 화답했다. 푸틴은 18일 저녁 모스크바 시내 마네즈나야 광장에서 열린 크림반도 병합 4주년 기념 콘서트 집회에 참석해 유권자의 지지에 감사를 표했다. 그는 “여러분 모두가 나의 팀이고, 나는 이 수백만 명 팀의 구성원”이라며 “성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푸틴 스스로 대표적인 치적으로 꼽는 크림반도 병합은 이후 러시아가 서방의 경제 제재에 정면으로 맞서는 구도를 가져와 그의 지지율을 8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스파이 독살 시도’는 예상외 호재
푸틴 대통령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둔 데는 대선 직전 연출된 영국 미국 등 서방과의 전면적 갈등 구도가 적잖은 기여를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안드레이 콘드라쇼프 푸틴 대선캠프 대변인은 18일 대선 승리 파티에서 “투표율이 예상했던 것보다 8~10%포인트 정도 더 높다”며 “우리는 ‘위대한 영국’에 감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방 대 러시아의 대결 구도가 촉발된 계기는 지난 4일 영국에서 러시아의 이중스파이 출신 세르게이 스크리팔 부녀가 신경작용제 공격을 받은 사건이다. 영국은 러시아를 사건 배후로 보고 지난 14일 러시아 외교관 23명 추방이라는 강수로 대응했다. 15일에는 스파이 독살 시도를 러시아의 소행으로 적시한 미국 프랑스 독일 영국 정상의 공동성명도 나왔다.하지만 이 같은 대(對)러 공동 전선은 대선 흥행의 기회를 푸틴에게 제공한 셈이 됐다. 뉴욕타임스는 이 같은 영국과 러시아 간 초강경 맞대응이 “푸틴의 힘을 약화하기는커녕 러시아가 국내외 적들로부터 끊임없는 위협에 직면한 포위된 국가라는 푸틴의 입장에 힘을 실어줬을 뿐”이라고 평가했다.
◆중국 ‘시황제’와 미국 공백 메우나
대선에서 승리한 푸틴 대통령이 향후 이웃의 또 다른 강력한 지도자 시 주석과 함께 최근 ‘자국우선주의’ 행보를 보이는 미국의 리더십 공백 메우기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러시아와 중국의 전략적 협력 관계는 각별하다. 시 주석은 19일 러시아 중앙선관위가 푸틴 승리를 발표하자 바로 당선 축전을 보내 “함께 노력해 중·러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강화하자”며 우의를 과시했다. 앞서 푸틴 대통령도 지난 17일 시 주석이 국가주석으로 재선출되자 “당신의 숭고한 위엄과 명망을 다시 한번 입증했다”며 찬사를 보낸 바 있다.트럼프 대통령은 대러 추가 제재를 발표하고 최근 300억~600억달러어치의 중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하는 등 중·러 양국에 압박을 가하고 있다. 우방국까지 포함한 무차별 관세 폭탄과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강경한 반(反)이민 정책 등으로 글로벌 자유무역 체제에 균열을 내고 있다는 불만도 고조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초래한 이 같은 글로벌 리더십 공백을 시리아 등 국제분쟁에 적극 개입하는 러시아와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중국이 메우려 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설 기자 solidarit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