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유출 트라우마에 갇혔던 '금융 빅데이터' 상업 활용 가능해진다

금융 빅데이터 활용 방안
금융위, 개인·기업 신용정보 규제 대폭 완화

신용정보 규제 왜 풀었나
"핀테크 후진국 될라" 위기감
빅데이터 산업 활성화 통해
서비스·상품 다양화 기대

상반기 중 법개정 추진
공공부문 DB 민간에 제공
영리 목적 분석·컨설팅 허용
금융보안원에 거래 플랫폼
데이터는 익명 정보로 매매
최종구 금융위원장(맨 오른쪽)이 19일 세종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금융분야 데이터 활용 및 정보보호를 위한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최 위원장, 유광열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 성대규 보험개발원장, 손상호 금융연구원장, 민성기 신용정보원장. /연합뉴스
정부가 19일 발표한 ‘금융분야 데이터 활용 및 정보보호 종합방안’은 개인 및 기업의 신용정보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는 게 골자다. 취지는 빅데이터산업 활성화다. 금융권에 집적된 정보를 활용해 금융서비스와 상품을 다양화한다는 방침이다. 금융업계에서는 금융위원회의 이 같은 정책 방향에 대해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2014년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여파로 규제 강화에 쏠려 있던 정책의 흐름에 큰 변화가 일어나서다. 특히 빅데이터에 대한 상업적 거래 허용은 관련 산업 활성화에 상당히 기여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규제 때문에 한발 늦었다”한국은 2014년 신용카드 개인정보 유출 사태의 트라우마에 갇혀 있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신용정보(CB)사들이 공공 목적으로만 빅데이터를 분석할 수 있도록 규제하고 있다. CB사와 카드회사들이 빅데이터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 법적 근거도 불명확하다. CB사와 카드사들은 이 때문에 방대한 정보를 모아놓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핀테크(금융기술) 기업들은 통신기록과 인성검사결과 등을 활용한 대안적인 개인신용평가 모델을 개발해 중·저신용자 고객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 중국은 후발주자임에도 마이뱅크, 위뱅크 등이 통신·온라인 쇼핑 정보 등을 활용해 중금리 대출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정부는 이 같은 점에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금융업계에 축적된 정보량에 비해 관련 산업 성장은 더디다는 평가를 받고 있어서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이날 정책을 발표하면서 “우리 금융분야에서의 데이터 활용은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 거대 경제권역보다 한발 늦은 상황”이라고 밝혔다.정부는 금융권 빅데이터의 경제적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고 보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금융권에 축적된 데이터는 전체 데이터 규모의 절반가량”이라며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금융상품 등을 개발하는 소비자 중심의 금융혁신도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빅데이터 상업거래 허용

금융위는 우선 CB사에 금융 빅데이터를 영리 목적으로 분석·컨설팅할 수 있도록 했다. 금융위는 이를 위해 올해 상반기 신용정보법 개정을 추진한다.미국 영국 호주 등의 CB사들은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맞춤형 컨설팅을 유료로 제공하는 반면 한국 CB사들은 제한된 정보로 신용등급 평가업무에만 머물고 있다는 지적을 반영했다. 카드사들도 빅데이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명확한 지침을 주겠다는 방침이다. 미국 비자카드는 고객의 결제 위치와 시점, 구입 품목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인근 가맹점의 할인쿠폰을 발송하는 서비스를 시행 중이다.

또 신용정보원과 보험개발원 등 공공 성격의 금융정보기관에 쌓인 데이터베이스(DB)를 올해 하반기부터 중소형 금융회사, 창업·핀테크 기업, 연구기관 등에 제공한다. 신용정보원에는 개인의 모든 대출·연체·보증·체납·회생·파산정보가 있다. 보험개발원은 개인별 보험계약·사고·보험금 정보를 갖고 있다. 정보 수요자와 공급자가 각자 필요로 하고 제공할 수 있는 빅데이터를 거래하는 플랫폼이 금융보안원에 마련된다.

금융위는 이 같은 빅데이터 상업거래를 허용하는 대신 해당 정보를 지닌 개인이 누군지는 식별하기 어렵도록 했다. 이들 데이터는 개별 신원이 완벽히 삭제된 익명 정보나 개인을 특정하기 어려운 가명 정보 등 비(非)식별 조치가 이뤄진 형태로 제공·매매된다. 나이와 성별, 금융서비스 이력 등은 볼 수 있어도 그 사람이 누군지는 알 수 없다는 뜻이다.

박신영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