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숙박예약社 공습에… '토종' 호텔조인 폐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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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악화로 대금 지불 밀려
"결제만 되고 숙소예약 취소"
소비자 피해 120여건 달해
아고다 등 국내 규제 안 받아
가격표시제·환불규정 무시
국내업체 "가격경쟁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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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국내 업체들은 수수료나 환불 규정 등에서 엄격한 규제를 받고 있는 데 반해 국내에 진출한 외국 업체들은 그렇지 않다”며 “토종업체들이 역차별 규제로 경쟁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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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조인은 이날 홈페이지에 영업사정 악화로 폐업했다고 공지했다. 2003년 황은호 대표가 설립한 이 업체는 토종 숙박예약사이트 1세대다. 국내 업체 중에서는 시장점유율 4~5위다. 한 호텔 관계자는 “3년 전부터 호텔조인은 대금 결제를 미루는 등 재정이 나빠지고 있었다”며 “호텔에 지급해야 할 대금과 관리비 등을 갚기 어려워 사업을 접은 것으로 추측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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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조인의 폐업은 외국계 업체들이 국내 숙박예약서비스 시장을 장악하면서 국내 업체들이 밀려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작년 국내 숙박예약시장에서 외국 업체의 시장점유율은 53.7%에 이른다. 해외 업체들이 본격 진출한 지 5년 만이다.
국내에 진출한 해외 업체들은 아고다·부킹닷컴 등을 운영하는 프라이스라인, 익스피디아, 중국 최대 여행사 씨트립 등이 대표적이다.◆공정한 경쟁 불가능
여행업계는 토종업체들이 외국 업체와 제대로 경쟁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외국 업체들이 객실 판매수수료를 더 많이 받고, 국내 관광 규제도 적용받지 않기 때문이다. 숙박예약업체들은 호텔 대신 객실을 판매하고 중간 수수료를 받거나, 객실을 일반 판매가보다 수수료율만큼 저렴하게 대량 예약한 뒤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방식으로 마진을 남긴다.
국내 업체에 비해 객실을 대량으로 예약하는 외국 업체는 호텔에 수수료율을 더 높게 요구한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한국문화연구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 업체 수수료율은 15~23%로 국내 업체보다 5~8%가량 높았다.외국 업체들은 가격표시제, 환불 규정 등 국내 관련 규정을 지키지도 않는다. 국내 업체는 가격표시제에 따라 객실판매가격에 세금과 수수료를 모두 합한 총액을 표시해야 한다. 그러나 외국업체는 객실 판매가격만 보여준 뒤 세금과 수수료는 결제 직전에 알려준다. 같은 객실을 검색해도 해외 업체 판매가 더 저렴하게 뜨는 이유다.
또 30일 전에 소비자가 환불을 요구하면 계약금을 전액 돌려줘야 하지만 외국 업체는 이 규정을 지킬 의무가 없다. 아예 환불이 불가능한 조건으로 객실을 정상가격보다 더 싸게 판매하기도 한다. 한국소비자보호단체협의회가 지난해 외국 업체에 과도한 위약금을 소비자에게 돌려주라고 권고했지만 본사에서 환급을 거부했다. 외국 업체들은 호텔과 계약을 맺을 때 호텔들이 더 저렴하게 객실을 판매하지 못하게 하는 ‘최저가격보상제’ 조항을 넣는 등 불공정계약을 맺기도 한다.
이슬기 세종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는 “이탈리아에서는 최저가격보상제 조항을 계약에 넣지 못하게 하는 규제를 신설했고, 일본에서는 여행 상품을 소개할 때 누구에게 어떤 대가를 어떻게 지급할지 표시하는 여행사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며 “공정경쟁이 이뤄지도록 시장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수빈 기자 ls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