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시진핑 리스크'에 대비하고 있나

부작용 우려 커지는 中 '1인 지배' 장기화
자국 이익만 앞세운 패권주의 경계해야

강동균 베이징특파원
중국 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웨이보에는 최근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의 사진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아파트 경비원, 대형 건물의 주차 직원, 시내버스와 지하철 안내원, 쇼핑센터 판매원 등이 팔에 완장을 두른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붉은 완장을 찬 부녀회 간부가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거리를 청소하는 환경미화원이 완장을 차고 있는 광경도 곳곳에서 눈에 띈다. 40년 전 덩샤오핑((鄧小平)의 개혁·개방 정책 시행 이후 거의 사라졌던 완장 문화가 확산하는 건 최근의 정치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1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의 임기 제한을 없애는 개헌이 이뤄진 뒤 중국에선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장기집권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조치가 연일 쏟아지고 있다. 공산당과 중앙정부, 지방정부의 핵심 요직은 모두 시 주석의 측근들이 꿰찼다. 이들은 일제히 시 주석을 ‘인민의 영수(領袖)’ ‘국가의 조타수’라고 찬양하며 충성을 맹세했다.관영 언론은 마오쩌둥(毛澤東) 집권 시절 등장했던 ‘어록’ ‘금구(金句)’ 등의 표현을 동원해 시 주석 띄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군대에선 시 주석의 발언을 모은 어록집을 발간해 일선 장교와 병사의 학습자료로 활용한다. 중국 정부는 관영 CCTV와 중국인민라디오방송(CNR), 중국국제방송(CRI)을 통합한 ‘중국의 소리(Voice of China)’를 만들어 중국은 물론 세계에 ‘시진핑 사상’을 전파하는 데 나섰다.

시 주석 우상화 작업에 대한 비판 여론이 커지자 중국 정부는 여론 통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관영 매체는 시 주석을 겨냥한 불손한 내용의 글을 막기 위해 댓글 기능을 아예 없앴다. SNS에선 ‘연임’ ‘시황제’ ‘종신제’ 등의 게시물이 차단됐다. 시 주석을 교황이나 마오쩌둥에 빗댄 패러디물은 당국에 의해 강제로 삭제됐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은 점점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마오쩌둥처럼 종신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2035년까지는 권좌를 지키려 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시 주석이 지난해 10월 공산당 19차 전국대표대회에서 이때까지 사회주의 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시키겠다는 목표를 제시하기도 했다.미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선 ‘1인 지배체제’ 장기화가 가져올 위험성과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른바 ‘시진핑 리스크’다. 견제와 균형이 작동하지 않는 가운데 시 주석 판단과 신변에 문제가 생기면 중국을 넘어 세계가 심각한 곤경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마오쩌둥 시대엔 중국 내부에 그쳤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군사·경제적 위상이 달라진 지금은 그 여파가 세계로 확산할 것이란 걱정이다. 그래서 주요국 정부는 시진핑 리스크가 초래할 파장을 대비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시진핑 리스크를 준비하는 움직임을 찾아보기 어렵다. 베이징의 한·중 관계 전문가는 “시 주석이 내세운 중화민족주의와 ‘중국몽(中國夢)’은 국력을 과시하고 국익을 우선시하는 정책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며 “단기적으론 큰 변화가 없겠지만 머지않아 중국의 이익을 앞세워 한국을 압박하는 일이 잦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이 패권을 추구하면서 한·미 동맹을 의식한 공세적 조치를 취할 경우 한국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한국 정부가 치밀하게 시진핑 리스크를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