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국정교과서 진상조사의 희생양

박동휘 지식사회부 기자 donghuip@hankyung.com
역사교과서국정화진상조사위원회를 이끈 고석규 위원장의 지난 28일 ‘발언’이 교육부 공무원들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다. 진상조사위의 최종 주문은 25명의 공무원 및 민간인에 대한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의뢰, 그리고 징계 권고다. 이 중 10명이 교육부 현직 관료다.

조사 결과 발표차 기자간담회 연단에 선 고 위원장은 “적극적인 저항이 없었다” “시스템이 완전히 붕괴됐다”는 자극적 표현으로 교육부 공무원들을 질타했다. 양심도 없고 업무체계도 엉망인 것으로 드러났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강력한 의지를 갖고 밀어붙이는 정책을 공무원이 주관적으로 판단하고 저항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의문이다.고 위원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수사의뢰 대상이 아니라고 했다가 15분 뒤 대상이 맞다고 번복하기도 했다. 발표 과정에서의 단순 실수라는 설명이지만 선뜻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다. 박 전 대통령이 어떤 불법행위에 개입했는지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가 안된 데 따른 혼선이 아닌가 의심을 불렀다. 논란을 종식해야 할 진상조사가 오히려 혼란을 더 부른 셈이다.

진상조사위는 출범 이전부터 도마에 올랐다. 위원회 구성을 위한 태스크포스팀이 꾸려졌지만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교육부 내 ‘특정 집단’의 입김에 위원 선정이 좌우됐다는 뒷말이 파다했다. 국정교과서 기획과 제작에 관여하지 않은 외부 출신의 몇몇 위원이 위원회를 쥐락펴락했다는 게 교육부 내의 정설이다.

중·고교 역사교과서 국정화는 출발부터 논란이 컸다. ‘독재시절로 돌아가자는 것이냐’는 반대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올바른 역사교육을 위해 편파로 얼룩진 부분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 역시 컸다. 찬반이 극명했던 만큼 절차적 정당성을 얻는 데 더 노력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점은 박근혜 정부의 실책이다. 한계 속에서도 몇몇 무리수를 밝혀낸 점은 조사위의 공이다.

하지만 이번 조사는 균형감을 상실했다는 비판을 자초했다. 희생양 만들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기자간담회 직후 고 위원장이 교육감 선거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한 점도 조사의 중립성을 훼손했다. 조사 결과를 넘겨받은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입장이 더 곤란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