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가 정시 확대, 수능최저 폐지에 '나홀로 총대' 멘 이유
입력
수정
[김봉구의 교육라운지]지난달 30일, 박춘란 교육부 차관이 주요 사립대에 전화해 ‘정시 확대’를 요청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날은 대학들이 2020학년도 입학전형안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 제출하는 마감일이었다. 그리고 단 이틀 뒤인 이달 1일, 연세대가 입학전형 시행계획안을 발표했다.
교육부 요구 반영… 주요大 중 가장 빨라
서울대·고려대 등은 수능최저 폐지 '유보'
학종보다는 특기자·논술전형 축소가 핵심
연세대 입학전형은 정시 확대뿐 아니라 앞서 교육부가 권고한 수시전형 ‘수능최저학력기준 폐지’까지 반영했다. 주요 대학 중 가장 빠른 대응이었다. 교육 당국의 요구를 대학이 거절하기는 쉽지 않다. 때문에 다른 대학도 연세대의 뒤를 따를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이후 양상은 예상과 다르게 전개됐다. 교육부의 두 가지 요구사항 가운데 정시 확대는 각 대학이 내부 논의 중이다. 입학전형 제출기한을 오는 13일까지로 2주 늦춰 대학들이 가능성을 열어둔 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수능최저기준의 경우 다른 대학들은 ‘유지’ 쪽으로 가닥을 잡는 모양새다.
고려대는 수능최저기준 폐지에 부정적이다. 당장 수험생 혼란을 걱정했다. 서울대도 수능최저기준 폐지는 어려워 보인다. 서울대는 수시 지역균형선발전형에 수능최저기준을 적용해왔다. 각 학과들부터 수능최저기준 폐지를 반대한다. 여타 주요 대학 역시 수능최저기준 폐지에는 유보적이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에 대한 ‘깜깜이 전형’ 비판이 대학엔 부담으로 작용했다. 학종에서 그나마 객관성 담보장치로 인식되는 수능최저기준을 폐지하면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공정사회를 위한 국민모임은 전날(3일) 연세대에 “정시 축소를 조장하는 수능최저기준 폐지를 철회하라”고 촉구했다.연세대는 왜, 그것도 이례적으로 빠르게, 총대를 멘 것일까.
우선 ‘시간상 오해’가 있었다. 연세대 입학처 관계자는 “이번 입학전형안은 지난해부터 준비해오던 것이다. 교육부 차관 요구와는 무관하다”고 말했다. 교육부 설명도 일치한다. 출입기자단에 해명한 대로라면 박 차관은 연세대에는 전화하거나 직접 만나 정시 확대를 요구한 적이 없다. 통화한 곳은 중앙대·경희대·이화여대, 직접 만난 곳은 서울대·고려대다.이후 입학처장들의 논의 과정에서 정시 확대 사안을 공유했겠지만, 연세대가 앞서 직접 요구받은 5개 대학보다 굳이 먼저 움직일 이유는 없었다. 이전부터 준비해온 내용을 발표했다는 연세대 측 설명에 힘이 실린다.
즉 교육부 요구를 받고 급박하게 입학전형안을 마련한 것처럼 보이나 둘은 별개 사안이었다는 얘기다. 학내 입학전형위원회 심의를 거쳐 결정하는 절차상으로도, 두 사안이 연계됐다고 하기에는 물리적 시간이 부족했다.
연세대의 정시 축소 이유는 다른 요인에서 찾아야 한다. 특기자·논술전형 인원 감축의 ‘반대급부’가 그것이다. 연세대는 이번 입학전형안에서 전년 대비 특기자전형을 206명, 논술전형을 36명 줄였다. 대신 정시는 125명, 학종은 120명 늘렸다. 핵심은 특기자·논술전형 축소였다.수능최저기준 폐지 역시 크게는 이 맥락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대학 관계자들은 “연세대가 입학정원 강제 감축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연세대는 앞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공교육정상화법) 2년 연속 위반으로 입학정원이 35명 줄어드는 제재를 받았다.
법 위반 사유는 특기자·논술전형의 대학별고사 문항을 고교과정 밖에서 출제했다는 것이었다. 연세대의 ‘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선정 여부에도 악재가 될 수밖에 없는 사안. 수능최저기준 폐지는 바로 이 사업의 세부 안내를 통해 교육부가 권고한 사항이다.
일련의 흐름을 이으면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된다. ①공교육정상화법 위반→②입학정원 감축 제재→③고교교육 기여대학 지원사업 선정에도 영향→④문제가 된 특기자·논술전형 축소 검토→⑤지원사업 평가지표에 수능최저기준 폐지 여부 반영→⑥당국의 정시 확대 요구→⑦특기자·논술전형 축소 및 수능최저기준 폐지, 정시 확대 내용의 입학전형안 발표.물론 대학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다. 학종 선발인원이 많은데 수능최저기준까지 없애면 대학으로선 지원자 서류평가조차 벅차다. 2018학년도 입시부터 학종 비중을 대폭 늘린 고려대가 연세대와 달리 수능최저기준 유지 쪽으로 기우는 데는 이러한 이유도 있다.
김봉구 한경닷컴 기자 kbk9@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