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금형 퇴직연금 서두르면 관리 사각지대 놓일수도"

고용부 공무원 5~6명이
수천개 수탁법인 맡아야
美 200명·호주 80명과 대조

지급보증 등 안전장치도 없어
정부가 도입을 추진 중인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가 관리·감독 체계 미흡으로 ‘사각지대’에 방치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기금을 관리·감독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상황에서 제도가 시행되면 근로자의 마지막 보루인 퇴직연금의 안정성이 훼손될지 모른다는 이유에서다.

4일 금융권에 따르면 퇴직연금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각 기업의 퇴직연금 운용 전반을 결정하는 수탁법인의 관리·감독을 퇴직연금복지과에 맡기겠다는 방침이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는 회사로부터 분리된 수탁법인을 설립한 뒤 노사와 외부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기금운영위원회에서 퇴직연금 운영관리 전반을 결정하고, 필요 시 자금운용을 외부 전문기관(금융회사)에 맡기는 방식이다. 수탁법인은 고용부가, 자금운용을 위탁받은 금융회사는 금융감독원이 관리·감독한다는 계획이다.

고용부의 퇴직연금복지과 인력은 12명이다.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미국(200여 명), 호주(80여 명) 등과 비교해 턱없이 모자란다. 이마저도 퇴직연금 관리업무를 직접 맡고 있는 인력은 5~6명에 불과하다. 고용부는 현행 계약형 제도도 사용자의 관리·감독을 퇴직연금복지과가 수행하고 있어 큰 무리가 없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기금형 제도가 도입되면 수탁법인이 사실상 퇴직연금 운영을 결정한다는 점에 비춰볼 때 수탁법인 감독이 안정성 확보의 핵심이라는 게 금융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한 금융사 퇴직연금 담당 임원은 “5~6명에 불과한 고용부 공무원이 수천 개에 이르는 기업의 수탁법인을 관리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수탁법인이 지나치게 공격적인 투자를 결정해 손실이 났을 때 모든 손해는 근로자가 떠안게 된다. 또 기금형 제도를 도입한 미국 등 대부분 국가는 사고 시 퇴직연금 지급보증체계가 마련돼 있으나 한국은 아직까지 이런 안전장치가 없다. 이 때문에 노조도 회사가 퇴직급여를 운용해 수익을 내는 것보다 안정적으로 관리하도록 요구해왔다. 대부분 기업이 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대신 은행과 보험회사 등에 맡겨 원금 보장이 가능한 상품에 투자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류건식 보험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퇴직연금 운용에서 가장 중요한 건 안정적인 수급”이라며 “수급권 보호를 위한 관리·감독 체계 등 제도적 장치가 충분히 마련된 뒤 기금형 제도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경민 기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