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호의 생활 속 경제이야기] 떨어지는 투표율과 '합리적 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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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A33
자신이 사는 동네를 살기 좋은 동네로 바꾸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 중 하나는 선거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투표율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치러진 1948년 총선 투표율은 95.5%였는데 최근의 총선 투표율은 50%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이처럼 저조한 투표율로 당선된 사람을 지역의 대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50% 수준의 투표율에 득표율 50%로 당선됐다면 해당 정치인은 그 지역 사람 4명 중 1명에게서만 선택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른 3명의 지역 주민은 해당 정치인을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투표율을 올리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실현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이렇게 투표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은 투표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경제학은 이런 현상을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 합리적 무지란 특정 정보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해당 정보를 통해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수익보다 클 경우 차라리 정보를 습득하지 않고 무지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유권자가 정치에 관심을 덜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 공약을 확인하는데, 이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특정 후보자의 공약이 전부 자신의 선호에 부합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공약이 서로 다를 때 이들 중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하는 데는 적지 않은 노력이 들어간다.많은 유권자는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의구심을 갖기 쉽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진정으로 뽑고 싶은 정치인을 선별하고, 그 사람을 선출하기 위해 투표하러 가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고 해서 과연 자신이 원하는 정치인이 뽑힐까 하는 의구심이다. 대부분은 자신의 한 표가 그 사람의 당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지극히 적다고 생각한다.
유권자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투표장에 갈 유인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투표하지도 않을 것인데 굳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누군가가 좋은 정치인을 뽑아준다면 자신 또한 그로 인한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갖기가 더 쉬워진다. 합리적 무지란 이런 과정에서 유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동네의 대표를 뽑는 귀중한 한 표의 권리를 저버리는 행위를 과연 합리적(?) 무지라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
이처럼 저조한 투표율로 당선된 사람을 지역의 대표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예를 들어 50% 수준의 투표율에 득표율 50%로 당선됐다면 해당 정치인은 그 지역 사람 4명 중 1명에게서만 선택받은 셈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다른 3명의 지역 주민은 해당 정치인을 선호하지 않을 수도 있다. 따라서 투표율을 올리는 것은 대의민주주의 실현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이렇게 투표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왜 많은 사람은 투표에 관심이 없는 것일까. 경제학은 이런 현상을 ‘합리적 무지(rational ignorance)’ 이론을 통해 설명한다. 합리적 무지란 특정 정보를 얻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이 해당 정보를 통해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수익보다 클 경우 차라리 정보를 습득하지 않고 무지한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을 말한다. 유권자가 정치에 관심을 덜 갖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특정 정치인을 선택하기 위해 공약을 확인하는데, 이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든다. 특정 후보자의 공약이 전부 자신의 선호에 부합하는 경우는 없다. 따라서 공약이 서로 다를 때 이들 중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하는 데는 적지 않은 노력이 들어간다.많은 유권자는 이 과정에서 한 가지 의구심을 갖기 쉽다. 이렇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진정으로 뽑고 싶은 정치인을 선별하고, 그 사람을 선출하기 위해 투표하러 가는 번거로움을 기꺼이 감수한다고 해서 과연 자신이 원하는 정치인이 뽑힐까 하는 의구심이다. 대부분은 자신의 한 표가 그 사람의 당선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지극히 적다고 생각한다.
유권자의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투표장에 갈 유인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투표하지도 않을 것인데 굳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정치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또 다른 누군가가 좋은 정치인을 뽑아준다면 자신 또한 그로 인한 혜택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아니어도 된다는 생각을 갖기가 더 쉬워진다. 합리적 무지란 이런 과정에서 유발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동네의 대표를 뽑는 귀중한 한 표의 권리를 저버리는 행위를 과연 합리적(?) 무지라 불러야 하는지는 모르겠다.
박정호 < KDI 전문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