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권한 남용해 국정 혼란에 빠뜨렸다"… 핵심혐의 대부분 유죄

박근혜 前대통령 24년형 선고
'국정농단 사건' 기소 354일 만에 1심 선고

박근혜, 재판 거부하며 저항했지만 특검·검찰 '완승'
삼성 승마지원 72억·롯데 70억 등 뇌물로 판단
"블랙리스트에도 책임 있다"…최순실보다 중형
사진=연합뉴스
재판거부까지 하면서 결백을 호소했지만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 김세윤 부장판사는 한치도 인정하지 않았다. 1년 넘게 이어져온 박근혜 전 대통령(사진) 재판이 24년이라는 중형으로 마무리됐다. 기소된 18개 혐의 중 대부분인 16개를 유죄로 판단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과 검찰의 완승이다. 재판부는 뇌물죄 등 기존 혐의에 ‘블랙리스트’, 즉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 관련 혐의까지 유죄로 판단했다.

공소사실 18개 중 16개 ‘유죄’검찰의 구형량인 30년에는 못 미치지만 박 전 대통령이 사건의 ‘몸통’이자 최종 책임자라며 엄한 처벌을 내렸다. 재단 출연이나 삼성 관련 정유라 씨 승마지원 등 유죄로 인정된 최순실 씨의 혐의는 박 전 대통령에게도 그대로 인정됐다. 박 전 대통령과 최씨가 사실상 ‘한몸’인 공범으로 보고 박 전 대통령을 ‘국정농단의 정점에 있는 최종 책임자’로 규정했다. 그러면서 공범인 최씨보다 더 무거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검찰의 주장에 손을 들어줬다.
헌법재판소에서 박 전 대통령을 탄핵에 이르게 한 관련 혐의도 전부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전국경제인연합회 소속 18개 기업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과 관련해 “대통령의 권한을 남용해 기업체로 하여금 제대로 된 검토도 없이 거액을 출연하도록 강요했다”고 판단했다. “재단의 취지에 공감한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연했기 때문에 강요가 아니다”고 한 박 전 대통령의 주장은 인정하지 않았다. 김 판사는 “대통령과 그 의도를 전달하는 경제수석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기업은 흔치 않다”며 “요구 사항을 거부했을 때 겪을 수 있는 세무조사 등의 불이익을 염려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뇌물죄 혐의도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으로부터 정씨의 승마 지원비 등 433억원 상당의 뇌물을 받거나 약속한 혐의 중 72억9000여만원을 뇌물액으로 봤다. 말의 소유권이 실질적으로 최씨에게 있었다며 말 구입액 등을 뇌물로 인정했다. 다만 삼성의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 지원액에 대해서는 ‘부정한 청탁’이 입증되지 않아 제3자 뇌물죄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롯데그룹이 하남 체육시설 건립비용 명목으로 K스포츠재단에 준 70억원 또한 뇌물로 인정됐다. 박 전 대통령이 면세점 특허 취득 문제 등 신동빈 회장의 핵심 현안을 알고 있었다는 점, K스포츠재단에 추가 출연한 기업이 롯데가 유일하고 지원금도 거액인 점 등을 뇌물 근거로 들었다.

안종범 수첩 증거능력 인정이 결정타안종범 전 경제수석의 업무 수첩을 정황증거로 채택하고, 최씨와의 공모 관계가 인정된 점이 결정타가 됐다. 재판부는 안 전 수석의 수첩에 대해 “수첩 기재와 같은 내용의 대화가 있었다는 점을 인정할 간접사실에 대한 정황증거로 인정된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해당 수첩과 그에 대한 안 전 수석의 진술 등을 대부분 사실로 받아들였다.

최씨와의 공모 관계 또한 핵심 혐의마다 인정됐다. 재판부는 재단 출연금 강제 모금과 관련해 “재단의 명칭, 이사장 사무총장 등 주요 임원 등이 전부 최씨의 추천으로 정해졌다”며 “이는 평소 최씨의 요구 사항이 있었고 이를 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 실무진에 전달해 이뤄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개별기업에 대한 직권남용·강요 혐의를 판단하는 부분에서 박 전 대통령과 최씨의 공모 관계 인정은 정점을 이뤘다. 재판부는 “신생 광고업체인 최씨 소유의 플레이그라운드가 여러 대기업과 각종 계약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최씨의 부탁을 받은 박 전 대통령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둘의 연결 고리가 각종 이권에 개입됐다’는 취지로 결론지었다.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과 공모해 문화예술계 지원 배제 명단(블랙리스트)을 작성하고 실행한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청와대 직원의 증언과 수석비서관회의 자료 등을 보면 좌편향 예술계 인사들의 지원을 배제했다는 주요 보고서 등을 보고받은 사실과 이런 보고를 받고도 중단하라고 하지 않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질타했다.

이상엽 기자 ls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