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X조선 9개월 만에 다시 법정관리 '기로'

"대규모 구조조정 없이 회생 못해
보유 현금 1475억 연말이면 고갈
법정관리 가면 청산 가능성 커"
STX조선해양이 2016년에 이어 또다시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의 기로에 섰다. 지난해 7월 법정관리를 졸업한 지 9개월 만이다. STX조선 노사가 정부와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요구한 구조조정 방안에 합의하지 못하고 있어서다. 노조가 회사를 회생시켜 함께 살기보다는 노조원과 회사, 지역 경제 등을 볼모로 버티기로만 일관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가 금호타이어 등 부실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정치 논리로 해결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만큼 노사 합의에 실패하면 한때 ‘연간 수주 실적 세계 3위’에 올랐던 STX조선이 법정관리를 거쳐 청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도 나온다.

STX조선 노사는 9일 인력 감축 등 원가 절감을 골자로 한 구조조정 방안에 대해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정부와 채권단은 지난달 8일 STX조선에 조건부 회생 판정을 내리면서 이날까지 생산직 인건비 75% 감축 및 원가 절감 등 자구안 마련과 이에 대한 노사 확약서 제출을 요구했다.
채권단은 자구안 제출 마감 시한인 이날 밤 12시까지 노사 확약서 제출을 기다린 뒤 회생 절차에 들어갈지, 법정관리로 갈지를 결정할 방침이다.

STX조선 노사는 적극적인 협상에 나섰지만 인력 구조조정 인원을 놓고 타협점을 찾지 못했다. 이날 막판 협상에선 구조조정 규모를 조정하는 대신 무급휴직을 포함해 임금과 상여금 삭감 등을 통해 생산직 인건비 75% 절감 효과를 내는 방안이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STX조선이 노사 합의 불발로 법정관리를 신청하면 법원은 실사를 통해 회생 가능성을 따진 뒤 법정관리를 수용할지, 청산 절차를 밟을지 결정한다. 현재로선 청산 가능성이 크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산업은행이 지난해 11월 STX조선에 대해 진행한 외부 실사에서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게 나온 데다 대규모 인력구조조정 없이는 회생이 어렵기 때문이다. STX조선은 지난 2월 말 기준 1475억원의 현금을 보유하고 있지만 배를 제작하기 위한 인건비와 재료비 등을 감안하면 보유 현금이 올해 안에 고갈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채권단은 보고 있다.법정관리가 받아들여지더라도 신규 수주가 불가능해 경영 여건이 악화될 수밖에 없다. STX조선의 수주 잔량은 총 17척(건조 중인 5척 포함)인데, 이 중 상당수는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계약이 파기될 가능성이 크다. 법정관리 시 선수금 환급보증(RG) 발급을 받지 못해 신규 수주도 막힌다. RG는 조선사가 선박을 제때 건조하지 못하거나 파산하면 선주로부터 받은 선수금을 은행이 대신 물어 주기로 약속한 일종의 지급보증이다. 선주는 RG 발급 확인 후 조선사에 대금을 지급하는 만큼 수주에 필수적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STX조선 노사가 추가 협상을 통해 구조조정 방안에 합의할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도 나온다.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STX조선은 자금난에 따른 부도를 맞는 게 아닌 만큼 노사 간 구조조정 합의만 이뤄지면 법정관리를 피할 수 있다”고 했다.

박상용/강경민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