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텐] 패션 칼럼니스트 Lissa's, 애증의 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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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을 하는 사람이라면 뉴욕에서의 생활을 한 번쯤은 꿈꾼다. 필자도 그랬다. 뉴욕으로 삶터를 옮긴 지 만 6년이 돼 간다. 10년을 채우기도 전에 스스로를 뉴요커라 부르기엔 좀 민망하긴 하지만, 뉴욕을 사랑하고 미워하는 애증의 레벨로 뉴요커라는 타이틀을 탈 수 있다면, 난 충분히 그 자격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무엇이 뉴욕을 특별하게 하는가. 어떤 매력이 '패션 피플', 일명 패피들을 끌어당기는가. 앞으로 뷰티텐에서 그 매력을 하나하나 풀어보려 한다.내가 뉴욕에 처음 온 것은 대학 시절인 2003년 겨울이었다. 영어를 배우겠다고 어학연수를 온 내 눈에 비친 뉴욕의 첫 인상은 뜬구름 같았다. 아니, 지구를 벗어난 외계의 공간 같았다. 그냥 외국이 아니라 우리와는 전혀 다른 생김새의 사람들이 다른 언어를 쓰며 사는 '외계국', 즉 외계의 나라였다. 그게 나의 첫 뉴욕이었다. 학교 선배들이 '파슨스'라는 패션스쿨에 다니는 걸 보며 참 신기하고 존경스럽기만 한 막연함 정도로 다가왔다. 그런 삶이 10여 년 후 내 삶이 될 거라곤 꿈에도 몰랐다.
삶의 터전을 뉴욕으로 옮기고 난 후에도 뉴욕은 전혀 패션의 도시가 아니었다. 한 블록마다 있는 홈리스들, 거리에 널리고 널린 쓰레기들....한 블럭에 한두 빌딩은 항상 공사 중이었다. 인테리어나 익스테리어라고는 딱히 말할 것도 없는, 옆 테이블과 다닥다닥 붙어 앉는 너무 불편하고 작은 레스토랑이 유명하다는 맛집이라니...한 마디로 뉴욕은 너무나 각박하고 차가워서 살기에 힘든 도시였다.
그러다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3~4월이면 뉴욕은 선인장이 피워내는 귀한 꽃봉오리처럼 그 진가를 살며시 드러낸다. 3월 초 마지막 눈폭풍이 한 번 뉴욕을 쓸고 가면, 사람들의 옷이 하나 둘 가벼워지면서 뉴요커들은 "내가 이래서 여길 못 떠나" 하면서 또 다시 뉴욕과 화해의 악수를 청한다.동경에서 패션 공부를 하고 온 한국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뉴욕 패션에 너무 실망했다고 했다. 하라주쿠처럼 개성이 강하고 재미있고,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옷을 입는 사람이 많을 줄 알았는데 온통 블랙이라고 했다. 뉴욕 패션은 블랙이냐면서. 그 학생이 뉴욕을 아주 정확하게 설명했다고 볼 수도 있다. 뉴욕의 블랙을 우리 뉴요커들은 'Chic(시크)'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뉴욕 패션의 겉핥기라고 할 수 있겠다.
뉴욕이야말로 TPO, 즉 시간(Time), 장소(Place), 상황(Occasion) 에 따른 드레스코드가 확실한 도시다. 그만큼 TPO에 따라 드레스코드가 아주 세분화돼 있다. 뉴욕을 포함해 미국 전역은 파티 문화가 일상인 나라다. 평소에는 진(jean)에 흰 셔츠만 입고 다니던 사람들도 멋있는 드레스를 사거나 빌려서 그 옷을 입을 날만 손꼽아 기다린다. 그래서 사실 현지인이 되지 않고서는 진짜 뉴욕의 패션을 몸소 느끼기엔 어려움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직장이나 학교에서는 한국보다 더 보수적이고 더 재미 없는 룩들을 선보이지만 각종 파티에서는 과감하고 패션리더다운 면들을 선보인다.
그래서인지 뉴욕에는 정말 파티가 많다. 이 사람들, 정말 노는 거 좋아한다 싶을 정도로 과감한 파티들이 한 달에 한 번, 아니 일주일에 한 번씩 거창한 이름을 달고 여기저기서 사람을 들썩이게 한다. 4월을 앞둔 뉴요커들은 지금 '코첼라룩'을 한창 검색 중일 것이다. 코첼라란 매년 4월 팜스프링이라는 서부 사막 지역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뮤직 페스티벌이다. 미국 전역에서는 몇 달 전부터 코첼라 티켓 구하기 열풍이 시작된다. 코첼라가 임박한 4월 초가 되면 암표시장에서 정상 가격의 3~5배나 되는 표들도 줄을 서서 산다. 패션과 파티에 민감한 뉴요커들도 당연히 예외가 아니다. 4월이면 아직은 추운 뉴욕이라 뉴요커들은 이 때 짧은 바지와 탱크 탑을 열심히 싸 들고 조금 이른 여름을 맞이하고 오는 것이다.
글=리사 쿠/ 정리=태유나 기자 /사진=뷰티텐 DB youyou@tenas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