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반도체 기술유출 논란, 산업부는 제 역할 하고 있나

고용노동부가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 등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공개하기로 하면서 파장이 확산되고 있다. 이해당사자뿐 아니라 방송사 PD 등 제3자에게도 반도체 생산시설 구조 등이 담긴 정보를 공개한다는 방침이어서 해당 기업들에 비상이 걸렸다. 보고서에 담긴 핵심기술 정보가 고스란히 유출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고용부는 긴급 브리핑을 하고 “영업비밀이라고 할 만한 정보는 보고서에 담겨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산업보건학회 의견을 들었다고 하는데 그 학회가 반도체 공정이나 노하우가 갖는 산업적 가치를 제대로 판단했을지 의문이다. 고용부는 기업의 영업비밀 유출 피해 발생 시 행정심판·행정소송 등 법적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하지만, 기업 입장에서 보면 영업비밀이 새 나가는 순간 돌이키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한다. 삼성이 산업기술보호법에 따라 국가 핵심기술의 지정 및 관리를 다루는 산업통상자원부에 보고서에 담긴 내용이 핵심기술에 해당하는지 유권해석을 요청한 건 그런 절박감의 표출일 것이다.반도체는 국가에서 차지하는 기술적·경제적 가치가 높거나 해외 유출 때 국민경제 발전에 중대한 악영향을 줄 우려가 있는 국가 핵심기술 분야로 이미 지정돼 있다. 기업이 요청하기 전에 산업부가 먼저 정부 내에서 고용부에 협의를 요구했어야 할 사안이다. 지금처럼 부처가 따로 놀 바엔 국가 핵심기술의 지정 및 관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산업부는 지난해 LG디스플레이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중국 투자계획과 관련해 “국가 핵심기술이니 기술유출 우려가 없는지 정부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한 바 있다. 당시 LG는 유출 우려가 없다고 했지만 결국 투자일정 차질을 감수해야 했다. 이번에는 고용부의 무분별한 정보공개 방침으로 기업이 기술유출 우려를 제기하는 상황이다. 산업부가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한다면 직무유기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