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재윤의 '역지사지 중국' (14)] 이직(移職)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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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에서는 인재 유출 때문에 골치를 많이 앓는다. 좋은 사람을 찾기도 힘들고, 일단 채용해도 근속시키기 어렵다. 때로는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업무 인수인계도 없이 옮겨간다. 심각한 경우는, 회사의 민감한 자료들과 거래 관계마저 함께 떠나간다.
중국인들은 “조직은 부모처럼 자신들을 돌봐줘야 하는 관계”라고 인식한다. 처우가 약간만 좋아도 떠나고, 늘 관시 혹은 파벌을 만드는 데 열중하는 것을 보고, 어떤 이들은 “중국인은 영원히 귀속감을 찾는 존재”라고도 한다. 한편 중국식 경영문화를 설파하는 쩡쓰창(曾仕强)은 “중국인은 의뢰감이 있을 뿐, 보편적인 귀속감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회사를 내 집 같이’라는 구호로 직원으로 하여금 회사에 헌신하게 하려는 시도는 중국이라는 토양에서는 空中樓閣(공중누각)이다. 저명한 인류학자 쉬량광(許光)은 “혈연의 매우 중요한 연계는 중국인이 비(非)가족조직 또는 국가 일에 전심전력을 바치는 데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오직 혈연만이 중요하다.중국인에게 회사는 귀속감을 주는 곳이 아니라 밀림의 법칙이 적용되는 강호에 가깝다. 애초부터 회사에 대한 충성 자체를 기대할 수 없다. 느닷없이 회사를 떠난다고 해서, “믿었는데 의리가 없다” 또는 “그토록 키웠더니 배반하더라”는 말을 중국인들은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처우에 따라 바로 이직하는 행태를 보고, 어떤 이들은 중국에 서구식 자본주의가 빨리 침투했다고 간단히 정리해 버리지만 학자들은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장기근속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중국의 국영기업 등은 ‘大鍋飯(대과반·커다란 철밥통)’으로 불린다. ‘신이 내린 직장’이다. “출근은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出工不出力·출공불출력)”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여기서 일하면 “게을러진다’(養懶人·양나인)”고 비꼰다. 그래서 이런 안정된 직장, 즉 철밥통을 깨뜨리고 跳槽(도조: 가축이 자기 구유를 버리고 다른 구유에 뛰어들다. 즉 이직)하는 이들은 용기 있는 이들로 비춰진다. 우리는 이직을 자주 하면 “혹시 사회 적응을 잘 못하나” 하는 눈초리를 받았다. 사회적 압력이 적지 않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이직은 사회적으로 용인을 넘어서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가끔씩 만나던 일본인 기자가 취재 경험을 말해줬다. “일본 회사에서 오래 일한 중국인이 한 곳에 오래 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해서 매우 놀랐다. 일본 사람은 한 조직에 오래 있을수록 자부심을 갖는다.” 비슷한 예로, 필자 회사에서 매우 중시하던 조선족이 있었다. 중국 진출 초기부터 입사한 그는 회사에 공헌한 바가 적지 않았고, 애정도 그만큼 많아 보였다. 하지만 언젠가 “진작 회사를 떠났어야 했는데…”라고 하면서 “너무 오래 있어서 후배들에게도 창피하다”고 말해 필자를 놀라게 했다.
얼마 전에 만난 대형 국유회사 사장은 “직원들의 잦은 이직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했다. 회사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정되고, 이익도 많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하는 직원이 많다. 초우량 국유기업조차 인재 유치를 위해 통 크게 투자하는 사유기업에 늘 빼앗기는 것이다.
권한 이양은 신중해야중국 내 한국 기업에서 중국인들이 이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승진에 한계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바로 璃頂棚(파리정붕·유리천장)이다. 손쉬운 해결안은 승진을 자주 시켜주거나 혹은 권한 이양을 하는 것이다. 급여를 올려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그래서 일부 중국 회사는 상당한 물질적 보상을 해주지만) 한국 기업은 대부분 여건상 그게 그리 쉽지 않다. 한편 ‘小提昇(소제승·작은 승진)’은 유효하다. 기존의 승진 단계를 세세하게 더 늘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팀장까지 가는 기간 및 처우는 (회사로서는) 똑같지만, 직원의 명함은 자꾸 바뀐다. 자꾸 승진하는 것이다. 단번에 부장으로 승진시키는 것보다 단계를 늘려서 만족도를 높여줘야 한다.
한국 기업은 효율을 위해 결재 라인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직위체계도 간단하게 가져가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다른 문화권에서는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 너무 빨리 정상에 올라 버린 현지 직원은 이제 더 줄 것이 없는 회사를 향해 무언가를 더 요구하게 된다.
또 하나는 권한 이양인데, 이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 飮止渴(음짐지갈: 갈증을 해소하려고 짐새의 독을 마시다)은 안 된다. 짐()은 전설상의 독조(毒鳥)로 그 깃으로 담근 술을 마시면 죽는다고 한다. 반드시 ‘적절히’ 해야 한다. 권한 이양을 소극적으로 하면 회사 분위기를 다소 망치지만, 적극적으로 하면 회사 자체가 망할 수 있다. 다른 곳에서 통했다고 해서 중국에서 통할 것이란 추측은 무모하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중국인들은 “조직은 부모처럼 자신들을 돌봐줘야 하는 관계”라고 인식한다. 처우가 약간만 좋아도 떠나고, 늘 관시 혹은 파벌을 만드는 데 열중하는 것을 보고, 어떤 이들은 “중국인은 영원히 귀속감을 찾는 존재”라고도 한다. 한편 중국식 경영문화를 설파하는 쩡쓰창(曾仕强)은 “중국인은 의뢰감이 있을 뿐, 보편적인 귀속감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회사를 내 집 같이’라는 구호로 직원으로 하여금 회사에 헌신하게 하려는 시도는 중국이라는 토양에서는 空中樓閣(공중누각)이다. 저명한 인류학자 쉬량광(許光)은 “혈연의 매우 중요한 연계는 중국인이 비(非)가족조직 또는 국가 일에 전심전력을 바치는 데 장애가 된다”고 지적했다. 오직 혈연만이 중요하다.중국인에게 회사는 귀속감을 주는 곳이 아니라 밀림의 법칙이 적용되는 강호에 가깝다. 애초부터 회사에 대한 충성 자체를 기대할 수 없다. 느닷없이 회사를 떠난다고 해서, “믿었는데 의리가 없다” 또는 “그토록 키웠더니 배반하더라”는 말을 중국인들은 인정하지 못할 것이다. 처우에 따라 바로 이직하는 행태를 보고, 어떤 이들은 중국에 서구식 자본주의가 빨리 침투했다고 간단히 정리해 버리지만 학자들은 조금 다르게 설명한다.
장기근속을 부끄럽게 여기기도
중국의 국영기업 등은 ‘大鍋飯(대과반·커다란 철밥통)’으로 불린다. ‘신이 내린 직장’이다. “출근은 하지만, 일을 하지 않는다(出工不出力·출공불출력)”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여기서 일하면 “게을러진다’(養懶人·양나인)”고 비꼰다. 그래서 이런 안정된 직장, 즉 철밥통을 깨뜨리고 跳槽(도조: 가축이 자기 구유를 버리고 다른 구유에 뛰어들다. 즉 이직)하는 이들은 용기 있는 이들로 비춰진다. 우리는 이직을 자주 하면 “혹시 사회 적응을 잘 못하나” 하는 눈초리를 받았다. 사회적 압력이 적지 않다. 하지만 중국에서의 이직은 사회적으로 용인을 넘어서 오히려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한다.가끔씩 만나던 일본인 기자가 취재 경험을 말해줬다. “일본 회사에서 오래 일한 중국인이 한 곳에 오래 있는 것이 부끄럽다고 해서 매우 놀랐다. 일본 사람은 한 조직에 오래 있을수록 자부심을 갖는다.” 비슷한 예로, 필자 회사에서 매우 중시하던 조선족이 있었다. 중국 진출 초기부터 입사한 그는 회사에 공헌한 바가 적지 않았고, 애정도 그만큼 많아 보였다. 하지만 언젠가 “진작 회사를 떠났어야 했는데…”라고 하면서 “너무 오래 있어서 후배들에게도 창피하다”고 말해 필자를 놀라게 했다.
얼마 전에 만난 대형 국유회사 사장은 “직원들의 잦은 이직 때문에 잠을 못 잔다”고 했다. 회사는 더할 나위 없이 안정되고, 이익도 많이 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탈하는 직원이 많다. 초우량 국유기업조차 인재 유치를 위해 통 크게 투자하는 사유기업에 늘 빼앗기는 것이다.
권한 이양은 신중해야중국 내 한국 기업에서 중국인들이 이직하는 이유 중 하나가 승진에 한계가 있다고 여기는 것이다. 바로 璃頂棚(파리정붕·유리천장)이다. 손쉬운 해결안은 승진을 자주 시켜주거나 혹은 권한 이양을 하는 것이다. 급여를 올려주는 것도 한 방법이지만 (그래서 일부 중국 회사는 상당한 물질적 보상을 해주지만) 한국 기업은 대부분 여건상 그게 그리 쉽지 않다. 한편 ‘小提昇(소제승·작은 승진)’은 유효하다. 기존의 승진 단계를 세세하게 더 늘리는 것이다. 예를 들면 팀장까지 가는 기간 및 처우는 (회사로서는) 똑같지만, 직원의 명함은 자꾸 바뀐다. 자꾸 승진하는 것이다. 단번에 부장으로 승진시키는 것보다 단계를 늘려서 만족도를 높여줘야 한다.
한국 기업은 효율을 위해 결재 라인을 축소하는 경향이 있다. 직위체계도 간단하게 가져가려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다른 문화권에서는 다르게 작동할 수 있다. 너무 빨리 정상에 올라 버린 현지 직원은 이제 더 줄 것이 없는 회사를 향해 무언가를 더 요구하게 된다.
또 하나는 권한 이양인데, 이는 정말 신중해야 한다. 飮止渴(음짐지갈: 갈증을 해소하려고 짐새의 독을 마시다)은 안 된다. 짐()은 전설상의 독조(毒鳥)로 그 깃으로 담근 술을 마시면 죽는다고 한다. 반드시 ‘적절히’ 해야 한다. 권한 이양을 소극적으로 하면 회사 분위기를 다소 망치지만, 적극적으로 하면 회사 자체가 망할 수 있다. 다른 곳에서 통했다고 해서 중국에서 통할 것이란 추측은 무모하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