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권 박탈 없다"던 국토부, 밤샘 회의 뒤 "법 위반 여부 검토"

"사업권 박탈은 없다"고 버티던 국토교통부가 대한항공의 국적기 면허 유지에 문제가 없는지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진그룹 계열의 저비용항공사(LCC)인 진에어도 검토 대상이다.

현행 항공사업법에 따르면 국적기 면허를 발급받으려면 항공사 임원 중 외국 국적자가 한 명이라도 포함돼선 안 된다. 미국 국적을 갖고 있는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35)는 대한항공 임원과 함께 진에어에서 6년간 등기임원을 지냈다.17일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국적 항공사 임원으로 있는 것과 관련해 법 위반 사례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고 있다"며 "대한항공뿐만 아니라 다른 국적 항공사도 함께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이날 중으로 대한항공과 진에어에 조현민 전무의 과거 등기임원 재직 여부 등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공문을 보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이전까지 국토부가 "사업권 박탈은 없다", "사실상 사업권 박탈은 힘들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것에서 한 발 물러난 모습이다. 국토부 항공산업과 관계자들은 이번 사안과 관련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전날 밤샘 회의까지 한 것으로 알려졌다.국내 항공사업법 9조와 항공안전법 10조를 보면 사실상 외국인은 국적항공사의 등기이사가 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항공사업이 국가기간산업이자 안보와 직결돼 있다는 게 이 법의 취지다.

진에어에 따르면 미국 국적인 조현민 전무는 2010년 3월부터 2016년 3월까지 진에어 등기이사로 재직했다. 2010년 3월부터 2013년 3월까진 기타비상무이사(등기이사)였고, 이후에는 사내이사로 있다가 2016년 3월 돌연 사임했다.

조현민 전무는 해당 기간 '조 에밀리 리(CHO EMILY LEE)'라는 이름으로 진에어 등기임원에 올랐던 것으로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 등을 통해서도 확인됐다. 진에어 관계자는 "논란의 소지가 있어 등기임원에서 내려온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조현민 전무는 현재 등기임원은 아니지만 진에어 부사장직을 맡고 있다.

만약 조현민 전무의 진에어 등기임원 재직이 확인된다면 주무부처인 국토부는 관리·감독 소홀 지적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미 2년 전 조현민 전무가 진에어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만큼 이제 와서 면허 취소 등의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지도 다툴 여지가 있기 때문이다.

대한항공은 진에어와 경우가 다르다. 조현민 전무는 대한항공의 '미등기 이사'다. 항공사업법 9조와 항공안전법 10조는 등기이사에만 해당한다. 아시아나항공도 야마무라 아키요시(안전보안실 부사장), 에릭 오(안전보안실 상무) 등 외국인이 임원으로 앉아 있지만 이들 모두 미등기 임원이다.정치권에서도 조현민 전무에 대한 퇴진 압박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이날 "분명한 페널티가 있어야 할 것"이라며 "사법당국은 엄격한 법 집행으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도 "조현민 전무의 전횡은 간단히 용서될 일이 아니다"라며 "국민 앞에 사과하고 경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촉구했다.

대한항공은 전날 경찰 내사가 끝날 때까지 조현민 전무를 업무에서 배제키로 하고 대기 발령 조치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