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억울하다는 말 남기고 떠난 김기식

강경민 금융부 기자 kkm1026@hankyung.com
“끝까지 대국민 사과는 사실상 없었네요. 금감원 직원들에게도 마찬가지고요. 원장 때문에 직원들이 누구보다도 마음 졸이고 불안해했는데….”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사의를 밝힌 지난 16일 밤 한 금감원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이렇게 말끝을 흐리며 서운함을 드러냈다.

김 전 원장은 17일 오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장문의 글을 남겼다. 그는 “국민 기대에 미치지 못한 점, 대통령에게 누를 끼친 점에 대해 송구스럽다”면서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판단 결과는) 솔직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심정”이라고 밝혔다. 국회의원 시절 ‘외유성 해외출장’ 등 각종 의혹이 제기되자 ‘국민 눈높이에 못 미쳐 죄송하지만 사퇴할 뜻은 없다’는 당초 입장과 거의 다를 바 없는 내용이다.김 전 원장은 그러면서 “금감원장에 임명된 이후 벌어진 상황의 배경과 의도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국민들께서 판단할 몫”이라고 했다. 무슨 얘기일까. “금융개혁은 어떤 기득권적 저항에도 반드시 추진돼야 한다”는 그의 페이스북 글에 비춰볼 때 자신의 사퇴는 금융개혁을 방해하는 금융권과 일부 언론 및 야당의 반발에서 비롯됐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는 듯하다.

과연 그럴까. 여론이 등을 돌린 가장 큰 원인은 무엇보다 김 전 원장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태도에서 비롯됐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법률 위반 여부를 떠나 국회의원 시절 피감기관의 커피값까지 문제 삼았던 김 전 원장이 정작 자신은 피감기관 지원을 받아 수차례의 해외 출장을 다녀왔다는 사실에 국민은 분노했다.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은 ‘관행’이었다고 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국회의원 시절에 비슷한 의혹에 대해 철저하게 책임을 물었다. 김 전 원장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건 기득권의 반발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과오에서 비롯됐다는 뜻이다.

김 전 원장은 끝까지 자신의 ‘내로남불’에 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더욱이 18일 동안 자신을 보좌한 금감원 직원들에게는 사의를 표명한 다음날에서야 사과와 위로의 글을 사내게시판에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