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자연에만 존재하던 '거울 대칭 구조'… 인공적 재현 첫 성공

서울대·포스텍·LG디스플레이 공동연구
국제학술지 네이처, 표지논문으로 선정
한국 과학자들이 개발한 거울 대칭상의 금 나노 기하구조 논문을 소개한 국제학술지 ‘네이처’ 표지.
한국 과학자들이 자연에서만 존재하던 거울 대칭 구조를 금 입자를 이용해 인공적으로 재현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디스플레이와 3차원(3D) 안경, 광소자 투명 망토 등 다방면에 활용할 수 있어 연구 성과 자체뿐 아니라 향후 산업적 응용 가능성이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기태 서울대 교수와 노준석·김욱성 포스텍 교수, 장기석 LG디스플레이 연구소 책임연구원 등 국내 연구진은 단백질의 기본 구조인 아미노산 같은 생체분자에서만 나타나는 ‘거울상 대칭 구조’를 금 나노 입자에서 세계 최초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고 국제학술지 네이처 19일자가 소개했다. 네이처는 이번 연구의 중요성을 인정해 표지 논문으로 선정한 데 이어 다른 과학자는 물론 일반인의 이해를 돕도록 ‘뉴스앤드뷰’에 별도로 상세히 소개했다. 한국 과학자만으로 네이처 표지 논문을 장식한 것은 2012년 이후 처음이다.오른손과 왼손은 언뜻 보면 구조가 같아 보이지만 왼손용 야구 글러브를 오른손에 착용할 수는 없다. 거울상 대칭이란 이처럼 하나는 시계 방향으로, 다른 하나는 반시계 방향으로 뒤틀려 대칭을 이룬 구조다.

거울 대칭상이지만 겹치지 않는 성질을 ‘거울상 이성질’ ‘카이랄성’이라고 하는데, 아미노산을 포함해 생명 현상에 관여하는 모든 분자는 카이랄 구조를 가진다. 카이랄 구조를 가진 소재는 독특한 기하 구조와 광학적인 성질 때문에 촉매 재료나 광학 재료, 센서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이전까지 무기 재료로 카이랄 구조를 만드는 건 공정이 복잡하고 재료의 안정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었다.

연구진은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뒤틀린 거울 대칭 구조를 가진 균일한 금 나노 입자를 합성하는 데 성공했다. 기존의 무기 재료가 가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거울 대칭 구조를 가지는 펩타이드(단백질 조각)를 이용했다. 이렇게 합성된 입자는 한 변이 약 100나노미터(1㎚=10억 분의 1m)인 정육면체의 각 면에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뒤틀린 구조를 갖는다.연구팀은 빛의 반응도를 이용해 입자를 분석한 결과 카이랄 성질을 가진 단백질보다 100배 큰 구조로 이뤄졌다는 결과를 얻었다. 또 LG디스플레이와 협력해 이 금 나노 입자가 ‘3차원 편광현상’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편광현상은 빛이 일정한 방향으로만 진동하는 성질로 디스플레이, 3D 안경 등에 활용된다.

거울 대칭 금 나노 입자는 광회전 선택성을 가지고 있어 이후 편광제어 광소자, 음의 굴절률 소재, 투명망토 및 바이오 센싱 등의 분야에서 핵심 기술로 활용될 전망이다. 에너지 환경 촉매, 광통신, 홀로그램 등으로 이용될 수 있어 다른 산업에 파급력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장기석 LG디스플레이 책임연구원은 “이 금 나노 입자는 차세대 디스플레이 재료로서 유연성을 가지는 초박막 형태의 디스플레이 장치 제작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생체 모방 원리를 이용해 자연계에 존재하지만 그간 인공적으로 구현하지 못하던 카이랄 무기 나노 결정을 합성할 수 있음이 확인됐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