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시장에 임대료 '직격탄'… 공연장들 존폐 기로

문화현장 패트롤 - 연극계 불어닥친 젠트리피케이션

폐관된 세실·삼일로창고극장
공공지원금 받아 겨우 재개관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도 위기

月 임대료 1000만원 훌쩍 넘어
인건비 포함 땐 티켓수입액 5배
협동조합 만들어 공동소유하는
기획공연장이 대안으로 떠올라
폐관 위기에 놓인 서울 중구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지난 11일 서울 소공동 세실극장 앞에 연극계 인사들이 몰렸다. 경영난으로 폐관 위기에 처했던 세실극장이 재개관하게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하루 뒤인 12일 예장동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에 다시 그 인사들이 모였다. 이번엔 우려와 긴장감이 뒤섞인 표정이었다. 이곳 역시 폐관 위험을 안고 있어서다. 시장 자체가 열악하기도 하지만 공연장들이 줄줄이 존폐 기로에 선 이유는 따로 있다. 비싼 임차료를 견디지 못하고 있는 것. 김재엽 연출가는 “경제논리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는 임차인의 무력함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임차료 상승 직격탄 맞은 연극계
국내 연극 시장이 급격한 공연장 임차료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서울 강북지역이 잇따라 재개발되면서 이 지역에 포진해 있던 연극 공연장들이 임차료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는 현실이 국내 연극문화의 산실이던 대표적 극장들까지 덮치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대략 2015년부터 시작됐다. 삼일로창고극장이 2015년 폐관됐다가 올해 다시 문을 열었으며, 게릴라극장은 지난해 폐관됐다. 지금까진 서울시 등 공공기관의 예산 투입으로 가까스로 재개관하는 사례가 생겼지만 앞으론 도미노처럼 확산될 것으로 예상돼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급감하는 연극 공연장, 공연 횟수

폐관 위기가 불거진 연극 공연장들은 매달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임차료를 내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임차료와 인건비를 포함한 경상비용이 티켓 수입액의 평균 5배를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상대적으로 임차료가 덜 오른 대학로 공연장들도 티켓 수입의 1.2배를 경상비로 지출하고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관계자는 “경제 사정이 팍팍해지면서 연극 수요 자체도 줄어들고 있는데 임차료 부담까지 더해져 공연장들의 경영난이 가중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연극 공연장 수는 최근 3년 새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매년 발표하는 공연예술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5년 1290개였던 극장은 2016년 20개 넘게 폐관해 1268개로 감소했다. 지난해엔 더 큰 폭으로 줄어들어 1220~1230개가 남은 것으로 추산된다.도심 재개발로 인한 원주민 이주와 임차료 상승을 뜻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피해를 연극 등 관객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다채로운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들고 있다. 국내에서 연간 공연되는 연극은 2015년 7330회에서 2016년 6359회로 급감했다. 문을 닫지 않은 극장들도 공연 횟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비용 절감에 나선 영향이 크다. 지난해엔 6000~6100회에 그친 것으로 추정된다.

국내 연극계를 이끌어온 대표적인 인사들이 세상을 떠나는 비극도 벌어지고 있다. 2016년엔 극단 적도의 홍기유 대표가, 2017년엔 ‘김수로 프로젝트’를 기획한 아시아브릿지컨텐츠 최진 대표가 경영난에 시달리다 자살이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협동조합 방식 대안 될 수 있어”일단 기대할 수 있는 해결책은 공공기관 자금이나 예산을 이용한 ‘긴급 수혈’이다. 극장 재개관에 예산을 직접 투입하는 방식 외에 지원 정책도 마련되고 있다. 서울시는 2016년부터 ‘서울형 창작극장’을 매년 12곳 정도 선정해 지원하고 있다. 300석 미만 소극장에 임차료를 100% 지원하고, 지원을 받은 소극장은 순수예술 공연단체에 50% 이상 할인된 대관료로 공연장을 빌려주는 방식이다.

연극계도 해결책 마련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망원동브라더스(서울), 나무씨어터연극협동조합(대전)처럼 여러 극단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한 극장을 공동 소유하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예술경영지원센터 관계자는 “극장을 자유롭게 운영하면서 각 극단의 기획 공연도 올릴 수 있어 효과적”이라며 “관객들도 다양한 색채의 공연을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