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변 재건축 추진 아파트, 단지 내 공공 보행로 놓고 서울시와 갈등

"한강은 시민의 것" vs "아파트 단지는 사유재산"
“한강은 시민의 것입니다. 누구든 한강을 쉽게 오갈 수 있어야 합니다.” “아파트는 개인 사유재산입니다. 외부 행락객에게 단지 한복판을 내줄 순 없습니다.”

서울시와 한강변 재건축 추진 단지 간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서울시는 한강공원 접근성 강화, 한강 조망권 사유화 억제 등을 위해 통경축(조망권 등을 위해 확보해야 하는 공간) 확보, 층수 규제 등의 계획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이로 인해 재건축 계획에 심각한 차질이 빚어지자 한강변 아파트 주민들은 지나친 사유재산권 침해라며 맞서고 있다. 합의점을 도출하기 어려워 한강변 초기 재건축 단지의 사업에 줄줄이 제동이 걸리고 있다.
◆공공 보행로 반발 확산

23일 주택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잠원동 ‘신반포2차’ 주민들은 25일 서울시청에 찾아가 민원을 제기할 계획이다. 지난 12일 주민공람을 시작한 ‘서울 반포·잠원 아파트 지구단위계획’에 항의하기 위해서다. 18일 단체 방문 이후 두 번째다.

신반포2차는 한강변을 따라 길게 늘어선 13개 동 규모 단지다. 서울시는 단지를 관통하는 통경축을 만들어 시민들이 서울지하철 3·7·9호선 고속터미널역과 한강변 사이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안을 내놨다. 폭 6m로 조성해 공공에 24시간 개방할 방침이다. 단지 중앙부에는 6357㎡ 규모 문화공원도 짓는다. 길과 공원 부지는 신반포2차 재건축 시 기부채납(공공기여)을 통해 확보할 계획이다. 주민들은 서울시가 이 안을 전면 백지화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공공 보행로를 내면 단지가 둘로 쪼개지는 데다 주민들의 사생활과 안전이 침해된다는 주장이다. 사업지 한복판에 길과 공원을 만들 경우 아파트 최소 1개 동을 지을 부지가 사라져 재건축 사업성이 떨어진다. 신반포2차 주민 박모씨는 “주민들은 기존 한강변 재건축 아파트처럼 단지 가장자리에 소규모 ‘토끼굴’ 통로를 내는 방식으로 재건축을 계획해왔다”며 “단지 중심부 땅을 떼어가면 재건축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인근 상업지역과 통합 재건축 계획이 나온 ‘신반포4차’ 주민들도 서울시청 항의 방문을 계획하고 있다. 서울시는 반원상가와 태남빌딩 자리에 공공보행로를 낼 계획으로 신반포4차와 통합 재건축을 하도록 했다. 신반포4차 주민들은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어려워 재건축이 더욱 꼬일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광장동 ‘극동아파트’는 옆에 있는 소규모 단지 ‘삼성아파트’와 통합 재건축을 하도록 광진구청 등으로부터 권유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블록에 들어선 단지들을 한 번에 재건축해 아차산로에서 한강변으로 들어가는 녹지 통로를 넓게 조성하겠다는 취지에서다. 극동아파트 주민들은 대지 지분 차이가 많이 나 합의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층수 제한·기부채납 위치도 논란한강변 첫 번째 동(棟)을 15층으로 짓도록 한 규제도 분쟁 대상이 되고 있다. 소규모 단지는 이 규제를 따르기 힘들어서다. 단지 부지가 작고 옆으로 길게 늘어진 경우엔 동을 앞뒤로 배치할 수 없다. 잠원동 ‘신반포16차’ 조합 관계자는 “‘나홀로 단지’는 재건축하지 말란 얘기”라고 지적했다.

기존 사업 계획을 수정해야 하는 단지도 여럿이다. 서울 용산구 동부이촌동의 삼익아파트와 왕궁맨션, 성수4지구 등이 층수를 두고 서울시와 갈등을 빚고 있다. 왕궁맨션과 삼익아파트는 각각 29~35층과 27~35층 높이로 재건축하는 정비계획 변경안을 서울시에 제출했지만 ‘한강변 15층’ 규정 때문에 퇴짜맞았다. 서울시는 지난달 성수4지구 재개발 계획안에 대해서도 한강변에 배치되는 40층 이상 아파트 건물의 위치를 한강변 안쪽으로 변경하는 것을 검토해달라는 내용의 의견을 조합에 전달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한강변 땅 85% 이상이 주거 용도로 쓰이고 있다”며 “기부채납 등을 통해 공공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합들은 “수익성이 떨어져 정비사업 자체가 어려워진다”며 반발하고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에선 기부채납 부지 위치를 두고 서울시와 주민이 대립하고 있다. 서울시는 압구정동 구현대아파트 12·13동 부지에 2만6440㎡ 규모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할 계획이다. 압구정 지명이 유래한 ‘한명회 정자’가 있던 곳이다. 주민들은 단지 내 한강 조망권 등이 가장 뛰어난 알짜 땅에 아파트 대신 공원을 짓게 하는 것은 사유재산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은 공원을 다른 위치에 조성하겠다는 의견서를 수차례 제출했다. 압구정 구현대아파트 주민 정모씨는 “서울시가 재건축 허가를 담보로 주민 소유 땅을 가져가려 한다”고 주장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