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사라진 제품도 되살려내는 '팬덤'의 힘

슈퍼팬덤

조이 프라드블래너·에런 M. 글레이저 지음
윤영호 옮김 / 세종연구원 / 413쪽 / 1만6000원
2008년 2월, 미국 폴라로이드사는 중대한 결정을 발표했다. 자사의 즉석카메라에 사용되는 필름 생산을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디지털 사진 등장 이후 내리막을 걷던 이 회사는 이미 1년 전에 즉석카메라 생산을 중단한 상황이었다. 이 발표는 즉석사진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사랑하던 팬들을 충격에 빠뜨렸다. 더 이상 카메라에 필름을 삽입하고 버튼을 눌러 그 순간을 영원히 간직한 종이와 플라스틱 소재의 네모난 사진을 들고 있을 수 없게 됐다.

즉석필름의 소멸을 아쉬워한 팬들은 폐쇄된 공장을 다시 임차해 폴라로이드가 철수한 시장을 되살리려는 작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이 회생작업을 ‘임파서블 프로젝트’라고 명명했다. 투자자를 끌어들이고 고물이 된 공장에서 필름을 다시 개발했다. 품질이 수준 이하였지만 많은 사람이 이 필름을 구매한 뒤 사진을 찍고 의견을 전달했다. 3년 만에 임파서블의 소규모 연구팀은 전보다 더 선명하고 색감이 뛰어난 필름을 제작했다.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살려내고 명맥을 유지한 것은 ‘슈퍼 팬’들이었다. 이들은 일반 소비자에 머무르지 않고 좋아하는 대상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할애했다. 나아가 브랜드 이미지를 형성하고 변화시키는 데까지 참여했다. 조이 프라드블래너 뉴욕대 교수는 《슈퍼팬덤》에서 팬들의 활동이 어떻게 현대 소비사회와 어우러지는가에 대해 조명한다. 브랜드 소유주와 소비자가 융합된 팬덤 기반 경제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설명한다. 팬덤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이고, 팬덤이 브랜드와 상품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인지를 분석해 팬덤을 통해 브랜드의 지속성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코카콜라의 소다음료 ‘서지’도 팬들이 부활시킨 제품이다. 1996년 출시된 서지는 ‘짜릿함을 마셔요’란 슬로건으로 젊은 층에 어필했다. 에너지 드링크가 대세로 떠오르기 전에 학생들을 가장 사로잡은 음료 중 하나였다. 하지만 닥터페퍼, 마운틴듀 등 경쟁 음료의 공세에 매출이 줄자 2002년 무렵 생산을 중단했다.

그러나 이 음료의 맛과 추억을 잊지 못하던 팬은 많았다. 2011년 이들은 페이스북에 ‘서지 무브먼트’란 페이지를 만들고 코카콜라사에 재출시를 요구했다. 이들은 서지 캔을 쥐고 있는 사진, 서지 로고 스케치, 서지를 테마로 한 의상, 서지와 궁합이 잘 맞는 음식 등 다양한 콘텐츠를 제작해 공유했다. 이들은 자금을 모아 애틀랜타에 있는 코카콜라 본사 인근 도로에 “우리는 서지를 살 수 없어서 이 광고판을 샀어요”라고 쓰인 광고판을 세웠다. 결국 15만 명으로 불어난 서지 무브먼트 회원들의 압력에 굴복한 코카콜라사는 2014년 서지를 재출시했다.저자는 기업이나 브랜드가 팬덤을 유지하는 데는 진정성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팬들은 그들이 사랑하는 대상이 자신을 매혹시키기 위해 철저한 계획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다. 1980년대 후반 미국 프로레슬링은 스포츠 경기가 아니라 공연자들이 연출된 대결을 벌이는 것이라고 실토했다. 프로레슬링이 망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예상했지만 오히려 대규모 문화산업으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스마트 팬들은 레슬링의 화려한 볼거리와 연출된 공연을 펼치기 위한 기술적 극적 어려움을 이해했다. 그들은 레슬링 경기에 사용된 온갖 기술을 분석하고 토론하며 즐겼다. 저자는 “팬들은 팬 대상에 대해 더 잘 알수록 그만큼 더 친밀하게 느낀다”고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