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1.2평 소매상서 띄운 '승부수'… 20년 뒤 대륙 휩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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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둥닷컴 이야기중국 장쑤성 쑤첸에서는 대장간에서 쇠를 달구고, 두부를 파는 것과 함께 노젓기를 세상에서 가장 고된 일로 꼽는다. 베이징과 항저우를 연결하는 징항 대운하를 이용하려면 쑤첸을 지나야 해 대부분 주민이 노를 저어 생계를 유지했기 때문이다. 징둥닷컴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류창둥(劉强東)은 쑤첸 출신이다. 1998년 봄 거센 풍랑에 류창둥 부모의 전 재산이던 배가 가라앉았다. 베이징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회사를 다니던 20대 청년 류창둥은 배를 잃고 우는 어머니에게 “사람 목숨이 중요하다”며 “돈은 내가 갚아 나갈 테니 이제 배는 몰지 말라”고 위로했다.
리즈강 지음 / 한민화 옮김 / 프롬북스 / 634쪽 / 2만2000원
류창둥 징둥닷컴 CEO 스토리
'짝퉁' 난무했던 中 소매 시장
믿을 만한 제품으로 정찰제 승부
입소문 나면서 빠르게 성장
2004년엔 온라인쇼핑몰 전환
10년 간 적자에도 정품 고집해
흑자전환 뒤 알리바바 라이벌로
‘흙수저’ 류창둥은 그해 6월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불리는 중관춘의 하이카이시장 한쪽에 4㎡(1.21평) 규모의 판매대를 빌렸다. 처음엔 중고 컴퓨터와 삼륜차 한 대씩을 구입해 팔았다. 자본금은 회사를 다니면서 모은 1만2000위안(약 200만원)이 전부였다. 그 상점이 징둥그룹의 전신인 징둥멀티미디어였다. 콤팩트디스크(CD) 등 자기광학제품을 주로 팔았다.
그렇게 시작한 소매업체가 어떻게 20년 만에 연간 거래액 155조원, 사용자 수가 2억 명에 달하는 전자상거래 회사로 변신했을까. 답을 찾기 위해 경제경영 분야 전문 작가인 리즈강은 258명을 인터뷰했다. CEO 류창둥뿐 아니라 가족과 은사, 동창을 두루 만났다. 그룹 직원과 주요 투자자들과도 접촉해 징둥의 20년을 되짚었다.
규모가 작았지만 출발은 순조로웠다. 당시 ‘짝퉁’ 상품이 난무한 중국 소매유통시장에서 류창둥은 정찰제로 승부했다. 믿을 만한 제품을 내놓고 가격 흥정을 하지 않았다. 시장을 한 바퀴 쭉 둘러보고 다시 찾아오는 손님이 늘면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개업한 지 석 달 만에 직원을 한 명 채용할 만큼 바빠졌다. 매장을 늘렸고 판매 제품군도 확장했다.빠르게 성장하던 사업은 2003년 세계를 휩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장벽에 부딪혔다. 사스 공포에 거리에선 인적이 사라졌다. 사세는 급격히 기울었다. 손님을 대면하지 않아도 되는 온라인 판매로 눈을 돌린 것이 기회가 됐다. 온라인쇼핑몰의 잠재력을 직감한 그는 2004년 오프라인 매장을 완전히 접어버렸다.
온라인의 파도에 일단 몸을 실었지만 현실은 만만치 않았다. 시스템은 열악했고 온라인쇼핑몰의 생리에 정통한 인력이 없었다. 인재와 시스템에 투자할 대규모 자금이 절실했던 2006년 10월, 류창둥은 투자업계의 ‘큰손’ 쉬신 캐피털투데이 회장을 베이징에서 만났다. 쉬신 회장은 큰 포부를 가진 강직한 젊은이가 마음에 들었다. 향후 몇 년간은 이익보다 시장점유율 확보에만 집중할 것이라는 전략에도 공감했다.
200만달러 규모의 투자를 원한 류창둥에게 쉬신 회장은 “겨우 200만달러로 무슨 일을 하겠냐”며 1000만달러를 투자했다.2004년 온라인 사업을 시작한 뒤 징둥닷컴은 10년간 영업적자를 냈다. 알리바바와의 차별화를 위해 창업 초기부터 고수해온 정품 관리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했고 자체 배송 거점을 구축하는 데 돈을 아끼지 않았다. 중국 대륙 2860개 지역, 1821개의 자체 배송거점에서 3만 명이 넘는 정직원과 택배기사들이 배송한다. 매출은 매년 증가했고 2016년 흑자 전환에도 성공했다. 투자자의 안목과 신뢰가 도전을 가능케 했다. 2014년 징둥의 나스닥 상장식에 참석한 쉬신 회장은 “8년 만에 투자한 돈이 150배 불어났다”며 “돈을 번 것보다 한 회사가 위대한 기업으로 성장하는 데 일조했다는 사실이 더 기쁘다”고 말했다.
저자는 회사 규모에 맞춰 가는 리더십의 변화에도 주목했다. 혼자 결정하고 강한 추진력으로 회사를 키운 류창둥은 2013년 뒤늦게 미국 연수를 다녀온 뒤 달라졌다. 덩치가 커진 징둥의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탁월한 식견과 포용력이라는 것을 깨달아서다. 자신이 모두 쥐고 있던 권한은 임원급으로 이관했고 시스템을 통해 회사를 관리했다. 회의에서는 제일 마지막에 발언했다. 합리적이고 세분화된 인사체계를 조직했고 젊은 직원들이 신나게 일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마련했다.
600쪽 분량이 창업부터 시간순으로 배열돼 있어 다소 산만한 감은 있지만 다양한 에피소드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징둥이 어려움을 겪었던 부분들도 여과 없이 곁들였다. 20년을 관통하는 징둥의 전략과 추진력, 기업문화가 앞으로의 20년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이 젊은 기업의 성장은 여전히 진행형이기에 한국 기업들에도 힌트와 자극을 준다.
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