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공무원을 춤추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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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눈치보기에 공직 사회는 복지부동과거에 비해 정부 역할이 축소되고 민간 비중이 커졌다고는 하지만 공무원 역할은 여전히 막중하다. 공무원은 국내총생산(GDP)의 20%가 넘는 세금을 쓰고, 수많은 법령을 통해 국민 생활과 관련된 제도와 규칙을 정한다. 이에 따라 아파트 재건축이 규제되고 부동산 세제가 바뀌면서 경기가 변화하고 개인의 재산 가치가 달라진다. 최저임금제 인상, 근로시간 단축으로 기업의 경영 여건도 달라진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경제성장을 이룩한 데는 근로자와 기업 역할이 컸지만 개발 정책을 추진한 공무원 역할 또한 부인할 수 없다.
정책 수요 느는데도 생산성 논의는 全無
소신껏 일하게끔 환경 개선해 사기 돋워야
최종찬 < 국가경영전략연구원장·前 건설교통부 장관 >
그런데 최근 공직사회는 사기와 근무기강이 모두 떨어진 것 같다. 중요 정책은 대통령 선거공약이라는 명분 아래 청와대나 정치권에서 결정하고 있고 담당 부처 공무원들은 그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정책 입안 시 공무원보다는 시민단체나 대학교수 등의 입김이 더 세다.과거 정부 정책을 열심히 추진한 공무원은 적폐세력으로 몰려 불이익을 받는 사례도 많다. 업계와 유착관계를 없앤다며 퇴직 후 관련 분야로의 재취업도 제한하고 있다. 각부 장관 자리도 공무원 출신은 개혁 성향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되고 있다. 현직 장관 중 공무원 출신은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최종구 금융위원장뿐이다. 열심히 일해 승진하겠다는 공무원은 줄어들고 편하게 지내겠다는 공무원만 늘고 있다. 일이 많은 중요 직책보다는 편한 해외 근무나 유학 등을 선호한다.
공무원이 미래를 대비해 능동적으로 정책을 개발해야 할 텐데 사기가 떨어져 위에서 시키는 일만 소극적으로 하는 것은 국가 발전에 큰 걸림돌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공직사회 분위기에 대해 문제의식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소득주도 성장을 명분으로 공무원은 증원하고 복지예산 증대 등으로 재정 규모는 커지는데도 공무원의 생산성을 높이자는 이야기는 없다. 4차 산업혁명 준비, 복지정책, 저출산·고령화 대책 등 모든 것의 핵심 추진 주체는 공무원이다. 그들이 얼마나 사명감을 가지고 열심히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질 것이다.
공무원이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수립해야 한다. 첫째, 공무원이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모든 정부는 각각의 국정철학을 갖고 정책을 추진한다. 공무원이 그런 정책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했다고 다음 정부가 불이익을 주면 누가 일하겠는가. 과거 정부가 노동개혁, 원전 건설 등을 추진했는데 이것이 적폐이고 담당 공무원들이 책임질 일인가. 현 정부의 국정철학과 다른 정책을 추진했다고 불이익을 주는 일은 지양해야 한다. 감사원의 감사 중점도 바뀌어야 한다. 각종 인허가 과정의 잘못을 찾는 데 중점을 두기보다 “인허가를 왜 안 해줬는가”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적극적인 행정으로 변할 것이다.둘째, 인사권을 각부 장관에게 실질적으로 줘야 한다. 인사검증이란 명분으로 부처의 국장급 이상 간부, 각종 공기업, 투자기관, 출연기관 임원들 인사에까지 청와대가 영향력을 행사하는 실정이다. 공무원이나 공기업 임직원이 직속 상사에게만 인정받으면 승진해야 할 텐데, 청와대나 정치권 눈치도 봐야 한다면 제대로 일이 되겠는가. 일보다는 외부에 줄을 대는 데 열중할 것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폐해를 막는다는 차원에서도 인사검증은 국무총리실에 넘기고 투명하고 예측 가능하게 운영돼야 한다. 기관장의 인사권이 확립돼야 기강이 선다.
셋째, 공무원의 취업 제한과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도 여건에 따라 신축적으로 운영해야 한다. 공무원 중에는 전문성이 뛰어난 인재가 많다. 이들 제도의 취지는 지켜져야 하지만 현직 공무원의 사기 앙양과 인재 활용 측면에서 운영의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미국의 경우 무조건적인 취업 제한이 아니라 일정한 행위 제한을 한다.
넷째, 세종시 공무원의 근무 여건 개선이 시급하다. 길거리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어 몸도 고달프고 정책의 품질도 떨어지며 정책 대응 시간도 오래 걸린다. 중요 정책부처 공무원이 과거에 비해 일을 절반밖에 못 하는 형국이다.
공무원이 복지부동하면 국민이 고달프다. 경제가 활성화되고 국민이 편해지려면 공무원이 사명감을 갖고 일하도록 해야 한다. 고래도 칭찬하면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