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갑영 칼럼] 25번째 대입제도 개편이 성공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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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육의 기본철학·목표를 분명히 밝혀야대입제도는 항상 백가쟁명(百家爭鳴)이다. 모든 국민이 다양한 체험을 하고, 나름대로 일가견을 갖고 있는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제도가 수시로 바뀌는 과정에서 대담하게 도전한 성공담도, 줄을 잘못 서서 억울하게 실패한 역경도 부지기수다. 물론 성공보다는 안타까운 실패가 더 많을 수밖에 없다. 가고 싶은 대학의 정원보다 수험생이 월등히 많기 때문이다. 지금도 어지간한 대학이면 재수생이 신입생의 절반에 육박하지 않는가.
수험생 개성·선택권 존중하는 제도가 효율적
대학의 선발권과 자율성 대폭 확대할 필요
정갑영 < FROM100 대표·前 연세대 총장 >
입시지옥을 겪는 학부모들은 대부분 대입제도에 불만을 갖기 마련이다. 실패한 가정은 말할 나위 없고, 성공한 경우에도 사교육비에서부터 입학전형 서류에 이르기까지 불평불만이 없지 않다. 합격한 대학과 학과에 모두 만족하는 신입생이 과연 얼마나 될까. 수요와 공급의 구조적 격차가 워낙 큰 우리 현실에서 입시 결과의 만족도는 낮을 수밖에 없다. 이것은 곧 사회적 불만으로 이어지고, 정치권은 이 틈새를 파고들어 대입제도를 흔들어 놓는다. 대학교육에 대한 기본철학이나 목표도 분명하지 않은 채, 인기영합적인 개편을 단행하고 모든 대학에 획일적으로 적용한다. 이 결과 해방 이후 벌써 24번이나 대입제도가 변경됐다고 하지 않는가.이번 정부도 예외 없이 대입개편 특별위원회를 가동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아직은 어떤 철학과 목표를 갖고 있는지조차 불분명하지만, 공론화와 여론 수렴을 거쳐 또 하나의 대입제도가 등장할 모양이다. 공론화 방식과 위원회 구성 등 기술적인 논란도 많지만 이번 ‘25번째’ 개편이 선진화된 규범으로 정착하려면 우선 대입제도의 기본철학과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첫째, 수험생의 다양성과 잠재력을 배려하고 선택권을 존중해야 한다. 가장 이상적인 대입제도는 수험생들이 모두 자신의 특성과 잠재력에 걸맞은 대학을 찾아 가게 유도하는 것이다. 이것은 물론 실현되기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획일적인 제도보다는 개성을 존중할 수 있는 다양한 제도가 훨씬 더 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수능 성적도 한 과목만 반영한다거나 학생부에서도 특정 부문만 평가받을 수 있게 열어줘야 한다.
나아가 수능시험 횟수도 1~2회 더 늘려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운명을 결정하다니 얼마나 비인간적인 제도인가. 적어도 실수를 만회할 기회라도 부여해야 하지 않겠는가. 지원 대학의 숫자는 물론 지원 기간도 특정하게 제한할 필요가 없다. 또한 다른 대학에 편입하거나 취업한 이후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다양하게 넓혀줘야 한다. 지금은 대학 간 전학을 엄격하게 제한해 재수생을 늘리는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모두 대학을 보호하기 위해 수험생의 선택권을 제한하는 정책 아니겠는가. 이제는 수험생을 중심으로 대입정책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동시에 대학의 선발권과 자율성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개인의 다양한 특성과 잠재력을 수용해 미래의 동량으로 성장시키는 것이다. 대입제도를 학생부나 수능시험이라는 하나의 틀로 획일화하면 어떻게 다양한 특성을 가진 인재를 선발할 수 있겠는가. 획일적인 선발제도에서는 대학도 수험생도 정형화된 로봇처럼 ‘도토리 키재기’를 해야 한다. 대학의 특성에 따라 1년 내내 면접을 통해 학생을 선발하는 것도 허용해야 한다. 수험생 선발의 자율권을 부여하고 대신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를 의무화하는 자율형 사립대학 모형도 바람직하다. 다양한 방법과 선발 기준이 도입돼야 대학도 서열화를 극복하고, 설립 목적에 부합하는 차별화된 경쟁력을 길러갈 수 있다.
입시는 수십만 수험생이 자신의 자질과 적성에 적합한 대학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대학의 자율적인 선발권이 커질수록 개인의 다양성을 수용할 여지도 넓어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교육부의 획일적인 잣대 아래, 모든 수험생과 대학이 동일한 골인점을 향해 로봇처럼 전력질주하고 있다. 얼마나 후진적이고 경직적인가. 게다가 변덕스럽기까지 하다. 이제라도 수험생의 다양성과 대학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선진화된 제도를 확립해야 수험생도, 대학도 함께 생존해 나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