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북한→시베리아→유럽… 기차 타고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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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 시험운행 동해북부선, 남북정상 합의로 다시 주목
"부산을 출발, 북한과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기차여행을 갈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11년 전에 있었던 남북열차 시험운행 이후 기억에서 사라진 동해북부선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남북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함경남도(현 북강원도) 안변에서 강원도 양양까지 총연장이 192.6㎞인 동해북부선은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한 철도다.1929년 9월 안변∼흡곡 31.4㎞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구간별 공사가 이어진 끝에 1937년 간성∼양양 41.9㎞ 구간이 이어지면서 전 구간이 개통됐다.
동해북부선은 동해남부선과 연결돼 부산까지 이어질 계획이었으나 8·15광복과 함께 양양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리면서 더는 공사를 진행하지 못한 데 이어 6·25전쟁으로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휴전 이후 일부 구간에서 열차 운행이 재개됐으나 1965년 2월 속초∼간성 구간 폐지에 이어 1967년 1월 양양∼속초 구간까지 전 노선이 폐지됐다.그러나 1996년 북한이 안변∼금강산 구간을 복원해 금강산청년선으로 명칭을 바꾸고 남북합의로 2007년 5월 금강산∼제진 구간이 연결돼 열차 임시운행이 이뤄지기도 했다.
당시 '북남철도련결구간렬차시험운행 2007.5.17'이라고 적힌 현판을 기관차 앞에 붙이고 제진역(고성군 현내면)에 도착한 북한 열차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몸소 오르셨던 차 1968년 8월 9일'이라는 문구가 양각된 동판이 붙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당시 북한 기관사 로근찬씨는 "조국 분단 역사에 잊지 못할 날"이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1960년대 남한에서 추진된 동해북부선 건설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1961년 5월 북평∼옥계 구간 17.5㎞, 1962년 11월 옥계∼경포대 33.4㎞ 구간이 개통됐으나 더는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1963년 5월 영동선에 편입됐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동해북부선이라 하면 양양∼안변 구간 철도를 말한다.
동해북부선은 양양군 서면 장승리에 있었던 자철광업소에서 생산된 철광석을 수송하는 데 주로 이용됐다.
강릉, 양양, 속초, 고성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금강산 관광은 물론 서울 나들이에도 이용됐다.
종착역인 안변역에서 경원선 기차를 갈아타면 서울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5시 양양에서 출발하는 첫차를 시작으로 하루 4회 운행한 열차는 원산으로 유학하는 학생들의 통학 수단으로도 이용됐다.
하지만 1967년 양양∼속초 구간 폐지 이후 동해북부선에서는 더 이상의 기적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2007년 금강산∼제진 구간이 복원돼 열차 운행의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5월 17일 단 한 차례 임시운행으로 그치고 말았다.
남북정상 합의대로 동해선 철도를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 위해서는 단절구간인 강릉∼제진 104.6㎞ 구간이 이어져야 한다.
강원도는 동해선 연결이 남북공동선언에 포함된 데다 유라시아 진출 교통망 확보 차원에서 이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없는 국가정책사업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판문점 선언에 동해선이 포함되면서 큰 틀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에 대한 정부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청신호는 켜진 상태이다.
예타 면제는 경제성과 무관하게 동해선을 국가정책사업으로 추진한다는 의미이다.
2조3천490억원으로 추산되는 건설 비용은 남북협력기금 활용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도는 조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다.
통상적으로 기본설계 1년, 실시설계 2년 등 3년이 소요되지만, 동시 추진 시 2년이면 마칠 수 있으며 공사 기간 5년을 고려하면 완공까지 7년이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동해선이 연결되면 접경지역인 고성에서 통관 및 출입국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도는 북방물류·관광의 중심에 서게 된다./연합뉴스
"부산을 출발, 북한과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까지 기차여행을 갈 수 있는 날은 언제쯤일까…"11년 전에 있었던 남북열차 시험운행 이후 기억에서 사라진 동해북부선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남북정상이 판문점 선언을 통해 동해선과 경의선 철도와 도로들을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추진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함경남도(현 북강원도) 안변에서 강원도 양양까지 총연장이 192.6㎞인 동해북부선은 일제가 수탈을 목적으로 건설한 철도다.1929년 9월 안변∼흡곡 31.4㎞ 구간 개통을 시작으로 구간별 공사가 이어진 끝에 1937년 간성∼양양 41.9㎞ 구간이 이어지면서 전 구간이 개통됐다.
동해북부선은 동해남부선과 연결돼 부산까지 이어질 계획이었으나 8·15광복과 함께 양양이 38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갈리면서 더는 공사를 진행하지 못한 데 이어 6·25전쟁으로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휴전 이후 일부 구간에서 열차 운행이 재개됐으나 1965년 2월 속초∼간성 구간 폐지에 이어 1967년 1월 양양∼속초 구간까지 전 노선이 폐지됐다.그러나 1996년 북한이 안변∼금강산 구간을 복원해 금강산청년선으로 명칭을 바꾸고 남북합의로 2007년 5월 금강산∼제진 구간이 연결돼 열차 임시운행이 이뤄지기도 했다.
당시 '북남철도련결구간렬차시험운행 2007.5.17'이라고 적힌 현판을 기관차 앞에 붙이고 제진역(고성군 현내면)에 도착한 북한 열차에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께서 몸소 오르셨던 차 1968년 8월 9일'이라는 문구가 양각된 동판이 붙어 있어 눈길을 끌었다.당시 북한 기관사 로근찬씨는 "조국 분단 역사에 잊지 못할 날"이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1960년대 남한에서 추진된 동해북부선 건설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했다.
1961년 5월 북평∼옥계 구간 17.5㎞, 1962년 11월 옥계∼경포대 33.4㎞ 구간이 개통됐으나 더는 북쪽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1963년 5월 영동선에 편입됐다.
따라서 일반적으로 동해북부선이라 하면 양양∼안변 구간 철도를 말한다.
동해북부선은 양양군 서면 장승리에 있었던 자철광업소에서 생산된 철광석을 수송하는 데 주로 이용됐다.
강릉, 양양, 속초, 고성지역 주민과 학생들의 금강산 관광은 물론 서울 나들이에도 이용됐다.
종착역인 안변역에서 경원선 기차를 갈아타면 서울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 5시 양양에서 출발하는 첫차를 시작으로 하루 4회 운행한 열차는 원산으로 유학하는 학생들의 통학 수단으로도 이용됐다.
하지만 1967년 양양∼속초 구간 폐지 이후 동해북부선에서는 더 이상의 기적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2007년 금강산∼제진 구간이 복원돼 열차 운행의 기대감이 높아졌으나 5월 17일 단 한 차례 임시운행으로 그치고 말았다.
남북정상 합의대로 동해선 철도를 연결하고 현대화해 활용하기 위한 실천적 대책들을 취해 나가기 위해서는 단절구간인 강릉∼제진 104.6㎞ 구간이 이어져야 한다.
강원도는 동해선 연결이 남북공동선언에 포함된 데다 유라시아 진출 교통망 확보 차원에서 이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없는 국가정책사업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판문점 선언에 동해선이 포함되면서 큰 틀에서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에 대한 정부의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청신호는 켜진 상태이다.
예타 면제는 경제성과 무관하게 동해선을 국가정책사업으로 추진한다는 의미이다.
2조3천490억원으로 추산되는 건설 비용은 남북협력기금 활용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도는 조속한 사업 추진을 위해 기본설계와 실시설계를 동시에 진행하도록 정부에 요청할 방침이다.
통상적으로 기본설계 1년, 실시설계 2년 등 3년이 소요되지만, 동시 추진 시 2년이면 마칠 수 있으며 공사 기간 5년을 고려하면 완공까지 7년이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동해선이 연결되면 접경지역인 고성에서 통관 및 출입국 절차를 거쳐야 하는 만큼 도는 북방물류·관광의 중심에 서게 된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