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美, '중국제조 2025' 때리는 내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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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은 기술 도둑' 비난에 숨은 속내“5세대(5G)통신, 궤도교통, 전력장비 등은 ‘세계 선두’, 로봇, 미래자동차 등은 ‘세계 톱 수준’, 반도체 등은 ‘격차 축소’.” 올 1월 발표된 ‘중국제조 2025’ 새 로드맵에 담긴 전망이다. 중국이 2015년 5월 첫 로드맵을 내놓은 후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다. “새 로드맵은 제조업 업그레이드가 아니라 인터넷 등과 결합한 산업 자체의 업그레이드”라는 해석도 나온다.
美, '혁신력' 불안감 표출 가능성
韓, '美·中 갈등' 본질 놓치고 있어"
안현실 논설·전문위원, 경영과학박사
‘중국제조 2025’가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미국 통상공세의 빌미가 되면서다. 미국은 “중국이 지식재산권을 훔치고 있다”고 밝혔지만, 한 꺼풀만 벗기고 들어가면 복잡한 속내가 엿보인다.첫째는 ‘중국제조 2025’의 목표물에 대한 불쾌감일 것이다. 로드맵은 1단계(2016~2025) 강국 대열, 2단계(2026~2035) 강국 중간, 3단계(2036~2045년) 강국 선두를 내걸었다. 중국 공정원(공학한림원)은 ‘제조업 강국 보고서’에서 국가군을 적시했다. ‘1등급(미국), 2등급(독일, 일본), 3등급(중국, 영국, 프랑스, 한국).’ 최종 목표는 미국이란 얘기다.
그렇다고 미국이 ‘중국제조 2025’의 목표 때문에 저런다고 하기엔 뭔가 부족하다. 더 근원적인 이유들을 찾는다면 먼저 연구개발(R&D) 투자에서 미·중 역전의 위협이 꼽힌다. 미국 과학계는 올해가 구매력 기준 R&D 투자에서 중국이 미국을 추월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산업 경계 붕괴, 융합 가속화 등 급변하는 환경에서 오는 불확실성도 빼놓을 수 없다. 언제든 돌연변이가 튀어 나와 후발국이 선발국을 질서있게 따라가는 ‘기러기 편대 모델’을 깨기엔 좋은 기회다. ‘중국제조 2025’가 ‘연속적 혁신’이 아니라 ‘불연속적 혁신’으로 가지 말란 법도 없다. ‘데이터의 사우디아라비아’로 불리는 거대 인구 중국이 “인공지능(AI) 세계 최강이 되겠다”고 한 선언이 미국을 긴장시킨다는 주장이다.역사적 경험이 던지는 불안감도 있을 것이다.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은 “경제학 교과서 모델이 작동하지 않는다”며 “중국의 비교우위는 가짜”라고 맹비난했지만, ‘헤게모니 이론’은 다른 메시지를 던진다. 후발국이 선발국이 정한 규칙대로 하면 추월하기 어렵다고.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후 알렉산더 해밀턴 초대 재무장관이 작성한 ‘제조업 육성 보고서’가 좋은 사례다. 나바로 국장은 이런 ‘불편한 진실’을 알기에 ‘중국 때리기’에 더 열심인지도 모른다.
미국의 속내는 그렇다 치고 중국 때리기가 먹힐까 하는 건 또 다른 문제다. 미국은 “중국은 기술 도둑”이라고 말하지만, 역사적으로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나라는 없다. 18세기 산업혁명을 주도한 영국도 ‘절도망각증(kleptomnesia)’에서 예외가 아니다. 그런 영국이 기술유출을 막겠다며 숙련공 이민은 물론 기계류 수출까지 규제했지만 실패했다.
미국이 중국 기업의 자국기업 인수 금지에 나섰지만 기술이전엔 공식적인 경로만 있는 게 아니다. 유학, 수출입, 현지 투자 등 비공식적인 경로까지 막기란 불가능하다. 과거 영국과 독일 간, 미국과 일본 간 경주를 보면 후발주자 때리기는 오히려 추격 의지에 불을 붙이기도 했다.역사는 말한다. 추격자는 때린다고 될 일이 아니란 것을. 경제 패권을 가른 ‘확대재생산 체제’의 선순환은 혁신에서 왔고, 새로운 산업의 주도권을 쥐는 쪽이 승자였다. 지속적인 혁신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다. 훗날 역사가가 “그 당시 미국 경제가 중대한 전환점에 도달하면서 중국 때리기가 시작됐다”고 기록할지 누가 알겠는가.
걱정되는 건 미·중 무역전쟁을 바라보는 한국의 시각이다. “미국이 중국을 대신 때려주니 시원하다”는 반응이 나오는가 하면, 무역상 이해득실이나 따지고 있다. 이건 ‘무역 전쟁’이 아니라 ‘산업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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