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저출산과 기업의 역할

김용익 <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yikim5908@hanmail.net >
저출산이 사회 문제로 대두된 것은 2003년이었다. 1.4~1.5명으로 유지되던 출산율이 2002년 1.17명으로 급격히 낮아졌다는 통계가 발표되자 전국이 경악했다. 이후 저출산 대책이 강화됐으나 올해 출산율은 1.0명을 밑돌 것으로 보인다.

저출산 대책의 첫 번째로 누구나 보육을 꼽는다. 그래서 지난 15년간 보육 투자를 크게 늘렸다. 그래도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았다 ‘어정쩡한’ 보육으로는 아무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좋은 질의 보육을 충분히 공급해 육아노동 부담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 보육시간이 부족해 미술·태권도 학원에 추가로 맡겨야 하는 정도의 보육으로는 출산율을 높이지 못한다. 12세(6학년)까지 하루 최대 12시간을 부담 없는 비용으로 맡아주는 체제가 시급하다.‘완벽한 보육’이 출산율을 높일까. 여전히 그렇지는 않다. 보육은 아무리 잘 해도 낮시간의 돌봄노동을 해결해 줄 뿐이다. 저녁시간은 온전히 가족 몫이다. 상황은 어떤가. 통계청에 따르면 2014년 외벌이 부부는 매일 부인이 6시간, 남편이 46분 가사노동을 한다. 맞벌이 부부는 부인이 3시간13분, 남편은 41분이다. 일하는 여성은 8시간 직장근로, 2시간 출퇴근, 3시간 가사노동을 합쳐 하루 13시간 넘는 노동을 하는 셈이다. 그래서 “결혼은 미친 짓이다”란 말이 나온다. 한국 여성들이 결혼을 피하고 출산을 줄이는 것은 그들의 책임이 아니다.

해답은 가사노동의 양성 분담밖에 없다. 그런데 남성들의 가사노동은 너무 짧고 변화가 없다. 맞벌이 남편의 가사노동 시간은 2004년 32분이었다. 10년간 9분, 1년에 54초씩 늘어난 셈이다. 그래도 이제 많은 젊은 남성들은 가사노동을 분담할 용의가 있다고 한다. 문화적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여기서 기업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기업은 고용을 통해 출산과 육아의 바탕을 마련한다. 근로소득이 없는 출산율 증가는 불가능하다. 반대로 고용, 승진, 근로조건의 성차별은 여성의 결혼과 출산 의욕을 저하시킨다. 장시간 노동, 불규칙한 퇴근시간, 접대와 회식은 여성의 가사노동 부담을 가중시키고 남성의 분담을 불가능하게 한다. 그래서 성평등과 노동시간 단축, 정시퇴근제는 출산율을 높이는 데 필수조건이다. 또 이렇게 나눠진 일자리는 추가 고용을 일으켜 출산의 기반을 확장한다.

출산율에 대한 기업의 영향력은 긍정과 부정의 양면에서 결정적이다. 정부 정책뿐 아니라 기업의 변화가 국가 장래를 밝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