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단기 금리 격차 확대=강세장' 공식 깨졌다

경기 활황 신호인 스프레드 상승에도 코스피 지지부진

10년물 국채, 美와 동조화
장단기 스프레드 '이상 확대'

코스피지수, 석달 넘게 박스권
수출 감소·고용 불안 등이 요인

"실물경기 악화 조짐에 주식시장도 상승동력 약화"
국내 장기 국채와 단기 국채 간 금리 격차(장단기 스프레드)가 벌어지고 있다. 장단기 스프레드 확대는 통상 미래 경기를 밝게 내다보는 채권시장 참가자가 많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올 들어 수출 감소와 고용 불안, 물가 상승세 둔화 등 한국 경제의 이상 징후를 알리는 경고음이 여기저기서 울리고 있어 장단기 스프레드 확대 추세를 ‘경기 확장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커졌다’는 일반적 의미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진단했다. 과거 경기 호황기마다 장단기 스프레드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 코스피지수가 석 달 넘게 2400~2500대 초반 박스권에서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0.5%P 근접한 장단기 스프레드

8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0년 만기 국고채와 3년 만기 국고채 간 금리 격차는 지난 4일 0.481%포인트를 기록했다. 지난해 말 0.334%포인트보다 0.15%포인트 가까이 확대됐다. 장단기 스프레드는 코스피지수 등과 함께 경기선행지수 산출을 위한 지표 중 하나로 쓰인다.

장단기 스프레드가 벌어진 것은 올 들어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3년 만기 국고채보다 큰 폭으로 상승(국채 가격 하락)했기 때문이다.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지난달 한때 연 3% 선을 넘어서는 등 상승세를 지속한 여파로 연초 이후 0.292%포인트 급등(4일 기준)했다. 전병하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10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크게 상승한 것은 미래 경기가 호전돼 시중금리가 장기적으로 오름세를 탈 것으로 예상하는 시장 참가자가 많아졌기 때문이라기보다 미국 국채 금리와의 동조화 경향이 뚜렷해진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미국 중앙은행(Fed)이 9년6개월 만에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한 2015년 말 이후 한국과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간 상관계수는 약 0.85(최대값 1)다. 양국의 장기 국채 금리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향이 그만큼 강하다는 의미다.반면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같은 기간 0.145%포인트 오르는 데 그쳤다. 오창섭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올 들어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낮은 물가상승률 등을 이유로 세 차례 연속 만장일치로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하면서 한은의 통화 긴축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더뎌질 것이라는 전망이 퍼진 결과”라고 말했다. 작년 말까지만 해도 채권시장에서는 한은이 올 상반기와 하반기 각각 한 차례 기준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최근엔 오는 7월 한 차례만 올릴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연초 이후 외국인의 단기 원화 채권 매수세가 지속되고 있는 점도 단기 금리 상승 압력을 낮추는 요인이다. 외국인은 지난 1월 이후 21조원어치가 넘는 원화 채권을 순매수했다.

◆주식시장에 호재인가, 악재인가일반적으로 장단기 스프레드가 확대되는 것은 주식시장에 호재로 작용한다. 경기가 확장 국면에 접어들면 위험 자산인 주식에 투자하려는 투자자가 많아지기 때문이다. 장효선 삼성증권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국내 장단기 스프레드와 주가지수가 정(正)의 상관관계를 보인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장단기 스프레드는 코스피지수가 장중 2600선을 뚫고 오르는 등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던 지난 1월에도 0.5%포인트에 가깝게 벌어졌다.

하지만 이번에는 ‘장단기 스프레드 확대=주식시 장 강세’라는 공식이 들어맞지 않고 있다. 1월29일 사상 처음으로 장중 2600선을 터치(종가 2598.19)한 코스피지수는 미국 국채 금리 급등의 여파로 1주일 만에 2360선까지 떨어진 뒤 3개월 넘게 2400~2500대 초반에 머물러 있다. 한 운용사 펀드매니저는 “장기 금리 움직임과 달리 실물 경기는 악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어 주식시장도 상승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국내 기업의 수출은 18개월 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제조업 가동률도 9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