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충분하다는 이란핵합의… 트럼프 불만에 숨은 북핵메시지는

합의골자는 핵시설만 10∼15년 시한부 규제·정밀사찰
트럼프는 일몰규정·탄도미사일 누락·합의정신 훼손 불만
볼턴 '불충분 합의'는 '영구규정·더 넓은 의제' 촉구일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현지시간)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선언했다.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그간 이란의 핵합의 준수를 검증하고 이를 확인했다고 여러 차례 확인했음에도 미국은 결국 '마이웨이'를 선택한 것이다.

최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등이 핵합의 유지를 위해 발 벗고 나섰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이란 핵합의에 어떤 내용이 담겼기에, 그리고 이 협정이 이행되는 과정에서 어떤 문제가 있었기에 트럼프 대통령이 이처럼 불만일까.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은 또 다른 비핵화의 협상장인 북미정상회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두고도 주목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존 볼턴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은 이날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핵시설에만 국한된 고강도 규제·사찰
이란 핵합의은 2015년 7월 이란과 미국·영국·프랑스·독일·중국·러시아 등 주요 6개국 간에 체결됐다.협정의 골자는 이란이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는 조건으로 서방은 이란에 대한 제재를 단계적으로 해체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우선 이란의 우라늄 농축활동이 크게 제한됐다.

이란은 최고 3.67% 이하의 저농축 우라늄을 300㎏까지만 보유할 수 있게 됐다.핵합의 이전 이란은 농도 20%의 고농축 우라늄을 보유했다.

우라늄을 핵무기로 사용하려면 90%는 농축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원심분리기 수도 기존의 3분의 1 수준인 약 6천104개로 줄이기로 합의됐다.

이 기기의 수는 핵무기 생산에 필요한 우라늄 농축 능력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란은 또 핵무기 제조용 플루토늄을 생산하는 용도로 의심됐던 40㎿급 아라크 연구용 중수로를 개량하기로 동의했다.

중수로는 경수로와 달리 우라늄을 농축하지 않고도 플루토늄을 상대적으로 쉽고 빠르게 생산할 수 있다.

아울러 이란은 핵합의 이행과 관련해 IAEA의 광범위한 사찰을 받는 데도 동의했다.

IAEA는 협정 체결 이후 3개월마다 이란의 이행 실태를 확인해 보고서로 내고 있다.

지난 2월까지 모두 11차례 낸 분기 보고서에서 이란의 협정 준수를 확인했다.

지난 2월 보고서에서도 IAEA는 이란의 저농축 우라늄(농도 3.67% 이하) 보유량이 300kg을 넘지 않았으며 중수 보유량도 한도인 130t을 초과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 일몰규정·탄도미사일 누락에 트럼프 불만 집중
IAEA의 검증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핵합의에 대한 불만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대선 경선 때부터 "이란 핵합의는 끔찍하다"며 "지금까지 봐 온 계약 중 최악"이라며 협상 파기를 공언해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재협상을 하지 않으면 대이란 제재 유예를 더 연장하지 않겠다고 밝힌 뒤 결국 핵합의 탈퇴까지 선언했다.

전임 오바마 정권의 유산에 대한 불신과 저평가 때문이기도 하지만 합의 내용에 대한 명목적 불만은 비교적 뚜렷하고 일관적이었다.

미국 현지언론들은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을 대체로 3가지로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선 이란이 핵합의에 깔린 '합의 정신'을 위반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이란의 중·단거리 미사일이 예멘 등 중동 분쟁지역에 여전히 광범위하게 수출되고 있으며 일부는 핵탄두 장착용으로 개조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이 서방과 대립하는 시리아의 바사르 알 아사드 정권을 후원하는 점도 미국 입장에서는 '눈엣가시' 같은 활동인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란핵합의가 시한부라는 점에 강력한 불만을 토로해왔다.

원심분리기는 10년, 고농축 우라늄과 무기급 플루토늄은 15년이 지나면 규제가 풀리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기간이 끝나면 이란의 핵 개발을 막을 수 없다며 협정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해왔다.

끝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만 저지하는 데 국한되지 않는 범위가 더 넓은 새 협정을 만들고 싶다고 재협상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와 관련해 탄도미사일이나 중동 내 패권행보, 이란 내 인권문제 등을 다루지 못하는 점도 트럼프 대통령의 불만으로 소개되곤 했다.

실제로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유럽 주요국이 절충안으로 미국에 제시한 이란핵합의 보완책에도 이들 내용이 포함돼 있다.
◇ 대북메시지는 영구규정·더 넓은 의제·합의정신 이행?
이란 핵합의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불만은 북미협상에 나서는 미국 정부의 지향점을 일정 부분 가늠할 잣대로 주목을 받는다.

특히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불충분한 합의는 수용할 수 없다는 분명한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볼턴 보좌관은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우라늄 농축과 플루토늄 재처리 (포기)"라며 향후 북핵 협상에 대해 "(핵)확산 또는 무기통제 합의에서는 검증과 준수의 측면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이란 핵 합의에서는 이 부분이 완전히 부적절했다"고 덧붙였다.

일단 고농축 우라늄과 무기급 플루토늄의 생산을 규제하는 시한이 15년이라는 일몰규정을 지적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최근 미국은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영구적인 핵 프로그램의 폐기를 언급한 적이 있다.

기존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보다 강도높은 'PVID(영구적이며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라는 새 목표를 언급하며 북한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2일 취임하면서 "우리는 북한 대량파괴무기(WMD) 프로그램을 영구적이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방식으로 폐기하도록 전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지금까지 미국 행정부가 고정불변의 원칙으로 제시한 CVID와 비교해볼 때 'complete'(완전한)가 'permanent'(영구적인)로 대체된 것이다.

또 폼페이오 장관과 볼턴 보좌관은 폐기의 대상으로 생·화학무기까지 포괄하는 WMD를 거론하는 등 북한이 넘어야 할 허들의 높이를 일시적으로 올리는 모습도 보였다.

WMD는 한 번의 공격으로 인명, 대기환경, 사회 인프라에 심대한 타격을 주는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등을 통칭, 핵무기보다 개념이 넓다.현재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정상회담 날짜·장소와 함께 양국 간 주요 의제를 최종적 조율하기 위해 북한을 방문한 상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