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도 위기 아르헨, IMF에 300억달러 SOS… 원인은 '퍼주기 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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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자금 이탈로 17년 만에 또 디폴트 직면아르헨티나의 마우리시오 마크리 대통령은 8일(현지시간) TV 연설을 통해 “중앙은행의 금리 인상에도 페소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하락하고 주가가 급락함에 따라 국제통화기금(IMF)과 대출 협상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구제금융을 신청한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독일, 프랑스에 버금가는 경제 대국이었지만, 1940~1950년대 퍼주기식 복지정책 포퓰리즘의 후유증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또다시 국가 부도 사태를 맞았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아르헨티나는 IMF와 300억달러(약 32조3700억원) 규모의 탄력대출을 논의하고 있다.
받을 당시엔 좋았지만
교육·주택·식량 보조금, 공무원 연봉·연금 두 배로
모든 학생에 노트북 공짜
후유증 치료 '백약이 무효'
페소화 가치 마지노선 붕괴
금리 40%로 올려도 역부족
금리 40%에도 외국자본 이탈이날 한때 달러 대비 아르헨티나 페소 환율은 전날보다 4.61% 하락한 23.41페소까지 밀려 사상 최저를 기록하기도 했다. 페소화 가치는 올해 들어 25% 이상 하락했다. 환율 급락은 글로벌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데 따른 것이다.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은 자금 이탈을 막기 위해 지난 4일 기준금리를 40%로 인상했지만 소용없었다. 아르헨티나는 지난해 물가가 24.8% 오르는 등 매년 두 자릿수 물가 상승률로 몸살을 앓고 있어 글로벌 금리 상승에 가장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게다가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높아 최근 국제 유가 상승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최근 유가는 미국이 이란 핵협정을 파기하면서 배럴당 70달러를 넘어 고공행진하고 있다.
‘에바 페론’의 포퓰리즘 악령아르헨티나의 경제 위기가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1940~1950년대 후안 도밍고 페론 대통령과 부인 에바 페론의 포퓰리즘 정치 폐해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이들은 노동자와 서민을 위한다며 식량·주택·교육 등에서 보조금을 퍼주는 정책을 펴 큰 후유증을 남겼다.
페론의 정책은 2003년 집권한 네스토르 카르치네르 대통령과 뒤이어 대통령에 올라 2015년까지 집권한 그의 부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에 의해 다시 살아났다. 페르난데스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최대 석유가스 회사인 YPF를 국유화하는 등 국가사회주의를 더욱 심화시켰다. 공무원 연금과 봉급을 두 배로 올리고, 모든 학생에게 최신 노트북을 무상 지급하기도 했다. 사회주의와 포퓰리즘의 조합은 아르헨티나 경제를 최악으로 몰고 갔다. 페르난데스 집권 마지막 해 재정적자는 GDP 대비 6%를 웃돌았다.2015년 집권한 마크리 대통령은 아르헨티나 최고액권인 100페소 지폐에서 에바 페론의 초상화를 사슴으로 바꾸는 등 과거에서 벗어나고자 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만성적인 재정적자에서 벗어나고자 국채 발행 대신 수도·전기·가스 등 공공요금을 인상하자 소비자물가가 폭등하는 등 악순환이 계속됐다.
신흥국 위기로 번질까
주요 신흥국 통화 가치가 줄줄이 하락하면서 아르헨티나의 위기가 신흥국 전반으로 확대될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아르헨티나뿐만 아니라 터키 리라화 가치도 달러당 4.34리라까지 내려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고, 러시아 루블화 가치도 달러당 63.46루블로 내려 연초 대비 10.2%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위기가 인도, 베트남 등 신흥국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 신흥국이 통화 약세를 보인 것은 이들 국가의 경제적 체질 때문이란 분석이다. 아준 디베차 제러미 그렌탐(GMO) 신흥국 투자부문장은 “아르헨티나는 물가와 재정적자 등의 문제가 겹쳐 발생했고, 대부분 신흥국은 건전한 재정정책을 유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