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한 양반다리 이제 그만"… 사라지는 좌식문화

좌식 '마지막 보루' 장례식장·한식당·노인정도 방석 대신 의자

중앙대병원·아산병원 등 조문객 좌식 불편 호소에
입식 빈소 속속 도입

"좌식만 있다니 예약 취소"… 의자·테이블로 바꾼 식당 늘어
바닥에 앉지만 발 뻗을수 있는 '호리고타쓰' 형식도 많아

"좌식, 어르신 건강에 안좋다"… 소파 들여놓는 노인정 급증
직장인 최모씨(51)는 최근 모친상을 당한 지인의 장례식장을 찾아 신발을 신은 채로 절 대신 묵념을 했다. 고인이나 상주의 종교적 신념 때문이 아니었다. 빈소가 좌식이 아니라 입식으로 꾸며져 그런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어서였다.

입식 문화가 전통적인 좌식 관행을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좌식 테이블의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지던 장례식장과 한식당, 경로원 등의 풍경도 입식으로 바뀌고 있다. 바닥에 앉는 좌식 대신 등받이 있는 의자에 앉는 ‘입식 인테리어’도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허리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과 함께 좌식에 익숙하지 않은 외국인 관광객이 늘고 있는 점도 ‘입식 열풍’에 한몫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전통 한식당들도 입식으로

11일 의료계에 따르면 중앙대병원은 지난달 장례식장을 리모델링하면서 입식 조문실과 접견실을 새롭게 마련했다. 빈소를 일곱 곳으로 줄이는 대신 입식, 좌식, 혼합형(입식+좌식) 빈소를 골고루 구성했다. 상주가 원하는 대로 빈소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입식 빈소 두 곳은 조문실도 입식으로 꾸며 조문객이 신발을 벗지 않고 묵념할 수 있도록 했다. 상주도 바닥에 앉았다 일어서는 대신 의자에 앉아 대기할 수 있다.시설 투자나 변화가 많지 않은 장례식장들이 입식 빈소를 설치하는 것은 조문객들의 수요가 많아져서다. 병원 관계자는 “생활 환경이 좌식에서 입식으로 바뀌고 있어 장례식장도 그에 맞춰 바꿨다”며 “장례식장에 조문을 와 양반다리를 하거나 무릎을 꿇고 장시간 앉아 있어야 하는 조문객들의 불편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입식 대열에 동참한 병원은 이외에도 많다. 전북 익산의 원광대병원은 지난 2월 장례식장을 열면서 입식 빈소를 도입했다. 삼성서울병원과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등도 입식 빈소를 운영 중이다. 경희대병원도 이르면 올 하반기에 입식 빈소를 설치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좌식을 불편해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점이 변화의 동력이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해물요리 전문점 ‘백년가’를 운영하는 차경금 씨(55)는 “오늘도 손님 8명이 좌식 테이블밖에 없다는 말에 예약을 취소했다”며 “리모델링이 쉽지 않지만 장판 위에 놓을 수 있는 의자나 테이블이라도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좌식이지만 바닥을 뚫어 다리를 내릴 수 있도록 한 ‘호리고타쓰’ 방식의 인테리어도 과거에는 고급 일식당에서나 볼 수 있었지만 이제 한식당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오랜 전통의 한식당들도 방석을 걷어내고 그 자리에 의자와 테이블을 놓고 있다. 예조, 호정 등 서울 시내의 유명 한식당들은 지난해 일제히 입식으로 전환했다.

외국인 관광객 급증도 한몫

변화의 바람은 경로당으로도 확산하고 있다. 방마다 소파를 두거나 테이블, 의자를 들여놓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대한노인회 관계자는 “어르신들 사이에서도 건강을 생각해 좌식보다 입식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입식 테이블과 의자를 경로당 시설을 개보수할 때마다 조금씩 구입하고 있다”고 전했다.입식 열풍에는 외국인 관광객 급증도 한몫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2012년 처음 1000만 명을 넘은 뒤 꾸준히 늘고 있다. 서울 인사동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송모씨(56)는 “좌식 테이블을 불편해하는 외국인 손님이 많아 비용을 들여 인테리어를 입식으로 교체했다”고 했다.

올해 2월 열린 평창동계올림픽을 보기 위해 많은 외국인이 찾은 강원도에서는 좌식 테이블을 입식으로 바꿨는지가 한 철 장사의 성패를 판가름했다는 이야기마저 나온다. 강릉 경포대에서 횟집을 운영하는 김모씨(68)는 “가게에 외국인 손님들이 많이 찾아왔지만 좌식 테이블을 보고 다른 가게로 가겠다며 나간 경우가 허다했다”고 푸념했다.

좌식 생활이 건강에 좋지 않다는 인식도 입식 문화가 확산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허리나 관절에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바닥에 앉으면 상태가 악화될 우려가 있어서다. 범재원 중앙대병원 재활의학과 교수는 “목과 허리가 구부러진 나쁜 자세를 오래 유지하면 디스크에 가해지는 압력이 높아져 디스크가 터지는 원인이 될 수 있다”며 “바닥에 앉기보다는 허리에 무리를 덜 주는 등받이 의자에 앉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임락근/이지현/임유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