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제조업이 위기다

미·중·일은 親기업 정책으로 제조업 강국 추구
한국은 생산성 떨어지는데 노동시장도 경직적
규제 혁파로 투자의욕 돋우고 경쟁력도 살려야

박종구 < 초당대 총장 >
제조업이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GM 사태처럼 자동차산업의 성장동력이 급속히 사라지고 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표상으로도 위기 징후가 뚜렷하다. KOTRA의 ‘4차 산업혁명 관련 신산업 해외 경쟁력 설문조사’ 결과 한국이 1위를 차지한 분야는 전무(全無)한 것으로 나타났다. 독일이 전기자동차 등 8개 산업, 미국이 항공·드론 등 3개 산업, 일본이 로봇 등 2개 산업에서 1위를 차지한 것과 대조된다. 포천 글로벌 500대 기업 수도 15개로 미국 132개, 중국 109개, 일본 51개에 비해 부진하다.글로벌 컨설팅사 맥킨지에 따르면 제조업은 민간부문 연구개발(R&D)의 80%, 생산성 향상의 40%를 창출한다. 홍콩경제연구소 분석은 제조업 제품의 수출이 경제 호황을 이끄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임을 보여준다. 대니 로드릭 미국 하버드대 교수는 성장을 견인하는 제조업의 자동 에스컬레이터 역할을 주목한다. 주요 경쟁국이 제조업 활성화에 목을 매는 이유다.

미국 버락 오바마 정부는 ‘제조업 르네상스’를 내걸고 제조업 혁신, 기술인력 양성, 미국 기업의 본토 복귀를 추진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1조5000억달러 규모의 감세와 환경·노동·금융 부문의 규제 철폐로 투자의욕을 북돋우고 있다. 기업 부담 경감→제조업 부흥→지속 성장의 선순환 구조를 지향한다. 일본의 ‘아베노믹스’는 기업활력 제고에 방점을 둔 ‘친기업, 친투자’ 정책이다. 기업인의 기를 살려주고 구조개혁을 유도해 경제활력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중국은 ‘제조 2025’를 통해 우주·항공, 바이오·의약 등 10개 전략산업을 육성해 제조업 강국을 추구한다.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로 끌어올리기 위해 올해 3000억위안 규모의 반도체 펀드 추가 조성에 나서고 있다. 인도 역시 제조업 부흥이 ‘모디노믹스’의 키워드다.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전략을 통해 제조업 비중을 2022년까지 25%로 높이고 1억 명의 일자리 창출을 지향한다.

한국 제조업이 당면한 심각한 문제는 낮은 생산성이다. 작년 시간당 생산성은 34.3달러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7위다. 1위를 차지한 아일랜드(88달러)의 38%, 경제 규모가 비슷한 스페인(47.8달러)의 70% 수준이다. 한국 제조업의 축소판 격인 자동차산업이 저생산성의 폐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현대차의 중국 충칭(重慶) 공장은 울산 공장보다 생산성은 60% 높지만 평균 임금은 9분의 1 수준이다. 노동시장 경직성은 또 다른 경쟁력 저해 요인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에서 노사협력은 130위, 정리해고 비용은 112위로 나타났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게리 베커의 주장처럼 높은 비정규직 비율과 청년 실업률은 경직된 고용시장의 산물이다. 일본이 지난 10년간 본토에서 3개 자동차 공장을 신설한 반면 한국은 20년간 불모지 상태다. 양질의 일자리 수만 개가 사라진 셈이다. 스페인이 ‘유럽의 애물단지’에서 벗어나 세계 8위 자동차 생산 국가로 극적으로 부활한 것은 생산성 향상과 고용 유연화 덕분이다. 호주에서 강성노조 압박에 GM, 포드, 도요타가 철수한 반면 스페인에 투자가 몰리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체 근로자의 3.4%에 불과한 강성노조가 노동시장을 좌우하는 현실이 개선돼야 기업 간 임금 격차도 해소될 수 있다.구조개혁이 시급하다. 이자도 지급하지 못하는 한계기업이 2011년 2604개에서 2016년 3126개로 늘어났다. 소니는 이미지 센서와 게임 부문에서 경쟁력을 되살려 ‘기술의 소니’ 부활에 성공했다. 히타치 역시 TV, PC 부문을 포기하고 산업 인프라에 승부를 걸어 세계 3대 인프라 기업으로 변신했다. 구조조정을 통해 경쟁력을 살리는 것이 정답이다.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이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았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았다”고 강조한 것은 구조조정의 참뜻을 보여준다.

규제 혁파를 통해 투자의욕을 북돋우고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드론, 모바일 결제 부문에서 중국이 크게 앞서나가는 것은 한·중 양국의 규제 차이 때문이다. 제조업은 국민 경제의 주춧돌이다. 제조업이 강한 나라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