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태의 데스크 시각] K바이오의 적(敵)들

박영태 바이오헬스부장
꼭 폭풍전야 같다. 바이오업계가 그렇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감리 심사 절차가 시작되면서다. 첫 관문인 감리위원회가 오는 17일 열리고 최종 결정을 내릴 증권선물위원회는 23일 또는 다음달 7일로 잡혀 있다. 금융감독원은 1년여에 걸친 특별감리 끝에 지난 1일 고의적으로 분식회계를 했다며 삼성바이오로직스에 조치 사전통지서를 보냈다. 60억원의 과징금과 검찰 고발 등 최고 수위 제재를 예고했다. 5조원대 분식회계를 저지른 대우조선해양보다 훨씬 높은 수위다.

결과가 어떻든 이번 사태는 최악의 회계 스캔들로 남을 공산이 커졌다. 금감원 주장대로 초대형 분식회계 사건으로 기록되느냐, 금융당국의 기업 옥죄기 사건으로 남느냐의 기로에 서 있다. 벌써부터 파장은 심각하다. 주가는 급락했고 바이오산업까지 직격탄을 맞았다. 섣부른 특별감리 결과 공개로 논란을 자초한 금감원은 상급기관의 질타를 받는 등 체면을 단단히 구겼다.신뢰 위기 놓인 바이오산업

이번 사태의 발단은 삼성바이오로직스가 2015년 말 당시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를 관계사로 회계처리를 변경한 것이다. 미국 합작 파트너인 바이오젠의 콜옵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판단에서였다. 이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일시적으로 1조원이 넘는 순이익을 냈다. 금감원은 주요 주주였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유리한 영향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분식회계를 했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바이오젠의 콜옵션 행사 의사 여부를 떠나 회계처리 변경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정해진 2015년 7월 이후에 일어난 일이다. 다툼의 여지가 많은 배경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한국 바이오산업의 대표주자다. 설립 7년 만에 바이오의약품 수탁생산 분야에서 글로벌 1, 2위를 다투는 기업으로 초고속 성장했다. 하지만 이번 사태 여파로 이 회사의 미래를 장담하기가 어렵게 됐다. 이미 기업 신뢰도에 금이 가버렸다. 더 우려되는 대목은 한국 바이오산업을 바라보는 해외의 시선이다. 해외 투자자 사이에선 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당시엔 문제가 없다고 했다가 판단을 뒤집은 금감원을 성토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융당국이 국내 기업들의 ‘회계 리스크’를 조장한 꼴이 됐기 때문이다.첩첩산중 '회계 리스크'

바이오업계가 당면한 악재는 또 있다. 금감원이 공언한 10개 바이오기업에 대한 테마 감리다. 연구개발(R&D)비를 비용이 아니라 자산으로 회계처리해 이익을 부풀린 곳을 적발하겠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2, 제3의 차바이오텍이 나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많다. 이번 기회에 회계 투명성을 높이자는 목소리가 있지만 현실을 도외시한 탁상행정이라는 불만도 터져나온다. 미국식 회계 기준이 능사는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글로벌 제약·바이오시장을 주도하는 미국과 달리 한국 제약·바이오산업의 토양은 척박하기 이를 데 없다. 게다가 신약 하나를 개발하는 데만 수조원의 돈을 투입해야 하고 10년이 넘는 시간이 걸린다. 국내에는 자본과 인력이 턱없이 모자란다. 바이오벤처는 물론이고 제약사에조차 쉽지 않은 도전이다. 이런 까닭에 회계 기준 강화가 국내 바이오산업 생태계에 나쁜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걱정이 많다.일각에서는 정부의 바이오산업 육성 의지가 의심된다는 비판이 나온다. 주목받던 바이오기업들이 최근 잇따라 기술특례상장 심사에서 탈락한 것도 이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 아니냐는 억측까지 나올 정도다. 정부가 산업 리스크의 주범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얘기다. 이런데 ‘K바이오’에 미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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