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선 재무장관이 직접 스타트업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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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테크 천국 싱가포르 가보니1억달러(약 1070억원)에 이르는 투자를 받은 싱가포르 최대 핀테크(금융기술) 업체 엠댁(M-DAQ). 지난 9일 방문한 엠댁 본사에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을 한 60여 명의 젊은 직원들이 외환 결제 알고리즘 개발에 집중하고 있었다. 이 업체는 중국 알리바바의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 알리익스프레스에 환차손을 방지하는 외환 결제 솔루션을 공급하고 있다. 기술력을 인정받아 2015년 알리페이 운영사인 앤트파이낸셜이 지분 40%를 사들이기도 했다.
정부, 핀테크 육성 드라이브
관련업무 '원스톱' 처리
샌드박스로 규제 대폭 완화
작년 스타트업 투자 2억弗
기업가치 1조 '유니콘' 줄이어
그랩, 우버 동남아 사업권 인수
엠댁, 알리페이 투자 유치 성공
해외업체들 진입장벽도 낮춰
사무실에서 만난 토머스 강 엠댁 글로벌사업본부장은 “엠댁이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싱가포르 정부의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지원 정책 덕분”이라며 “재무부 장관이 직접 기업들의 대소사를 챙길 정도”라고 말했다.◆금융 스타트업 적극 지원
싱가포르가 ‘핀테크 스타트업의 천국’으로 떠오르고 있다. 싱가포르 통화청(MAS)이 2015년부터 대대적으로 핀테크 기업 육성에 나선 덕분이다. MAS는 금융기술혁신그룹을 신설해 핀테크 금융 규제 전반을 개혁하기 시작했다. 기업이 대정부 관련 업무를 한곳에서 모두 처리할 수 있는 창구인 ‘핀테크 오피스’도 설립해 민원 절차를 더욱 간소화했다.
MAS는 핀테크 규제 샌드박스 시행안을 발표하면서 기업의 재무 건전성·최소 납입자본·신용등급 등의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실험을 했다. 규제 샌드박스는 기준을 통과한 일부 업체를 선정해 새로운 제품 및 서비스가 출시될 때 일정 기간 규제 적용을 면제·유예해주는 제도다.핀테크 육성 정책에 힘입어 지난해 싱가포르 핀테크 스타트업 투자 규모는 사상 최고치인 2억2900만달러에 달했다. 누적 투자액 1000만달러 이상을 달성한 핀테크 업체는 엠댁을 비롯해 파스타캐시, 트레이드히어로 등 20여 곳에 달한다.
엠댁은 규제에 가로막힌 한국 핀테크 업체들을 위한 외환송금업 대행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초 한국 정부는 센트비, 모인 등의 해외송금업자들이 외환거래법을 위반했다고 보고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의뢰했다. 은행을 거치지 않고 가상화폐를 해외로 송금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후 법이 개정되면서 송금 라이선스를 취득하면 은행을 거치지 않고도 송금이 가능해졌지만, 금융실명법과 자금세탁방지법에 따라 여전히 고객 정보는 은행을 통해 받아야 한다. 강 본부장은 “한국식 규제는 싱가포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한국의 해외송금 스타트업 가운데 은행들의 비협조로 라이선스를 받고도 ‘개점휴업’ 상태인 곳이 적지 않다”고 했다.
◆정부 지원 업고 유니콘 탄생싱가포르는 핀테크 분야 외에도 다양한 스타트업을 지원하고 있다. 2008년 싱가포르 정부는 ‘혁신과 기업을 위한 국가 기초 사업’을 통해 벤처캐피털(VC)을 육성하며 스타트업 활성화에 나섰다. 이어 2014년에는 ‘스마트네이션’을 국가 목표로 선포하고 정보통신기술(ICT) 스타트업 지원 정책을 내놨다. 투자자에게 각종 면세 혜택을 주고, 혁신 기술을 보유한 업체에 최대 400만싱가포르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책으로 싱가포르에서는 잇달아 다양한 ‘유니콘’(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이 탄생했다. 우버의 동남아시아 사업권을 인수한 그랩, 동남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인 라자다, 미국 나스닥에서 8억달러 이상의 몸값을 뽐내며 상장한 게임 개발업체 시(Sea)는 모두 싱가포르에 본사를 두고 있다.
싱가포르는 해외 업체들을 받아들이기 위해 진입장벽도 낮추고 있다. 지난해 말 창업 비자를 받기 위한 자본금 요건을 삭제하고, 비자 유효기간을 1년에서 2년으로 늘렸다. 또 세계 각지의 블록체인 업체들을 싱가포르로 유치하기 위해 가상화폐공개(ICO)를 허용하는 가이드라인을 세웠다. 국내 스타트업인 YDM글로벌은 동남아 5개 국가에서 광고·마케팅 사업을 펼치면서 가상화폐를 이용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장대규 YDM글로벌 부사장은 “낮은 세율과 해외 업체에 친화적인 정책을 보고 싱가포르를 동남아 사업의 거점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배태웅 기자 btu10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