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피' 사라지는 韓 대학 연구실… '조로증' 걸린 日 닮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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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롱코리아 - 한계 돌파하는 과학기술기초연구의 인력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주력인 대학 전임교원의 고령화가 심각하지만 ‘젊은 피’ 수혈은 턱없이 부족하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기초연구 분야에서 ‘조로증’에 걸린 일본을 닮아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점점 일본 닮아가는 한국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이 전국 422개 대학 중 4년제 대학의 전임교원 현황을 분석한 결과는 충격적이다. 2012년 7만914명이던 전임교원은 2016년 7만4401명으로 늘었다. 연령대별로 구분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같은 기간 신진 연구원을 포함한 39세 이하 교원 수는 8614명(12.1%)에서 6940명(9.3%)으로 줄었다. 반면 60대 이상 교원 수는 8416명(11.9%)에서 1만3803명(18.5%)으로 증가했다.
(2) 역동성 잃어가는 연구환경
4년제 대학 전임 교원수
4년 새 3500명 늘었지만
39세 이하는 12%→9%로
日처럼 60세 이상만 증가
이공계 해외 유학생도 줄어
국제적 협력연구 고립 우려
기초연구 시스템 개선 시급
이런 상황은 과학 분야 노벨상 수상자를 22명이나 배출했지만 학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과학 연구의 역동성을 잃어가고 있는 일본과 비슷하다.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지난 3월 발표한 ‘네이처 인덱스 일본 2018’에 따르면 일본 대학의 40세 미만 교수 비율은 1986년 39%에서 2016년 24%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60세 이상 교수 비율은 11.9%에서 18.9%로 높아졌다. 일본의 고품질 과학 성과가 2012년부터 2016년 사이 19.6% 줄어든 것은 역동적으로 논문을 쏟아낼 젊은 연구원의 일자리 감소와 관련 있다고 네이처는 분석했다.한국은 해외에 유학하는 이공계 과학도 수에서도 일본과 닮아가고 있다. 미국과학재단(NSF)은 미국에서 이공계 박사학위를 받은 한국 출신 유학생이 2006년 1198명에서 2016년 890명으로 줄었다고 분석했다. 같은 기간 일본 출신 박사도 194명에서 129명으로 감소했다. 일본은 젊은 과학도에 대한 지원이 줄면서 자비로 대학원을 가거나 해외 유학을 가야 하는 사례가 늘어난 것이 유학생 수 감소로 이어졌다.
국내 박사 증가는 그만큼 자국 내 연구 역량이 커졌다는 뜻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과학계에선 해외에서 다른 나라 학자와 함께 연구할 접점이 줄면 국제적인 협력연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본다. 2006년 이후 미국에서 많은 박사를 배출하고 있는 중국(1위)과 인도(2위)는 같은 기간 박사 유학생 수가 늘었다.
차두원 KISTEP 연구위원은 “일본은 오랜 학문적 전통을 갖고 있지만 훗날 국제적인 공동연구에서 고립될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은 일본의 신진 연구자 육성 사업이 실패한 교훈을 잘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기초연구 위한 시스템 문제”
기성 연구자도 한국의 연구 환경이 ‘역동성 위기’를 맞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KISTEP이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위원과 우수 연구자, 과학기술유공자 1032명을 대상으로 과학기술 정책의 문제를 수렴해 처음 공개한 ‘국가 과학기술현황 종합인식도 조사’ 결과 많은 과학자가 국내 경제 상황에 비춰 정부 예산이 적정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이런 견해는 연간 20조원에 이르는 정부 연구개발(R&D) 투자가 더 이상 늘어나기 힘들다는 인식에 기반을 둔다.
과학자들은 이제는 소프트웨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응답자들은 국내 과학계에 역동성을 부여하고 새로운 연구 풍토가 정착하는 데 필요한 외국 우수 과학자 유치와 연구 몰입을 위한 환경 조성, 독창적인 기초연구 수행이 이뤄지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지 않다’는 답변을 더 많이 내놨다.임성민 KISTEP 혁신경제센터장은 “이번 조사 결과 국내 전문가들은 과학기술 정책이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하고 있다고 보는 반면 기초연구를 위한 환경과 민간과의 협력에선 부족하다고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