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충견인가, 늑대인가… 선거 때 가려내는 법

개와 늑대들의 정치학

함규진 지음 / 추수밭 / 396쪽│1만7800원
1848년 프랑스 2월 혁명은 나폴레옹 시대 이후 복고된 왕정을 무너뜨렸다. 1792년 시민혁명 이후 탄생한 공화국이 옛질서를 파괴했다면, 1848년 다시 세워진 공화국은 새로운 질서를 수립해야 했다. 진보와 보수, 자본가와 노동자, 농민들이 어느 한쪽도 우세를 장악하지 못한 채 정국은 늘 불안했다.

프랑스 최초의 대통령을 뽑는 선거에 후보자로 나선 인물은 나폴레옹 황제의 처조카인 루이 나폴레옹 3세였다. 그는 한때 위대한 프랑스제국을 건설했던 ‘나폴레옹 향수’를 자극했다. 자본가는 그가 좌파를 견제해 주기를 기대했고, 좌파 지식인과 농민들은 그의 개혁안에 매력을 느꼈다. 나폴레옹 3세는 모두에게 갖가지 약속을 하며 대통령에 선출됐지만 모두를 배신했다. 그는 사조직을 결성해 권력을 키우고 언론 출판 집회의 자유를 제한했다.나폴레옹 3세 이후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를 통해 당선된 뒤 국민을 배반하고 독재 권력을 구축한 사람은 많았다. 아돌프 히틀러도 1932년 독일 총선에서 국민에게 갖가지 약속을 남발한 다음 권력을 장악했다. 그는 민의를 대변한다며 전쟁을 벌이고 유대인 등 소수 민족 학살을 자행했다.

함규진 서울교육대 윤리교육과 교수는 《개와 늑대들의 정치학》에서 고대 로마부터 1987년 대한민국까지 세계사적으로 중대한 정치적 순간을 살펴보고, 민주주의와 선거의 의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책 제목은 빛과 어둠이 혼재돼 멀리서 다가오는 동물이 나를 반기는 개인지, 해치려고 달려드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힘든 황혼의 순간을 의미하는 프랑스 격언 ‘개와 늑대의 시간’에서 빌려왔다. 선거 때는 저마다 ‘충견’이 되겠다고 하지만 훗날 탐욕스러운 늑대가 돼 주인에게 이빨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로마 공화정 유권자들은 기원전 60년 선거에서 탁월한 수완을 발휘한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지도자로 선택한다. 그는 독재자가 돼 황제로 등극하기 직전 측근에게 암살당했다. 시민 스스로 끌어내리는 형태가 아니라 소수에 의한 전복은 로마 공화정이 무너지고 황제가 통치하는 제정으로 바뀌는 단초를 제공했다.7세기 예언자 무함마드는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을 토대로 이슬람제국을 건설했다. 그의 사후에 후계자가 추대되는 과정에서 각 후보들을 지지하는 세력은 광신자로 변질됐다. 이들은 서로의 지도자를 암살하는 등 극단으로 치달았다. 맹목적 지지자들이 정치에 어떤 악영향을 끼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는 재앙과 같은 ‘늑대’의 선택뿐만 아니라 충실한 ‘개’를 선택해 성공한 사례도 보여준다. 1784년 윌리엄 피트는 24세에 영국 최연소 총리가 될 당시 휘그와 토리 양당의 불신을 받았다. 인구가 50명밖에 안 돼 직접적인 유권자 매수가 가능한 ‘부패선거구’ 덕에 정계에 진출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원칙과 상식을 추구하는 ‘보수의 가치’를 바로 세우며 영국 의회정치의 기틀을 다졌다.

1912년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우드로 윌슨은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같은 카리스마는 없었다. 하지만 약육강식이 당연히 여겨지던 시대에 모든 나라가 평등하게 국제문제를 토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비전을 밝혔다. 민족자결주의를 담은 그의 ‘평화원칙 14개조’는 한국을 포함한 수많은 피압박 민족에게 복음이 됐다.저자는 선거를 ‘착한 사람을 뽑고 나쁜 사람을 버리는 게임’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차가운 시선과 뜨거운 가슴으로 우리의 대변자라고 떠드는 사람을 주시하고, 이들의 목줄을 꽉 잡아 길들여야만 우리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